요즘 콘도(아파트)가 많은 맨해튼은 물론이고 싱글하우스가 집중돼 있는 버겐카운티에는 부동산 매물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동네마다 `세일` 푯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주말에는 바이어들이 집을 둘러볼 수 있도록 곳곳에서 `오픈하우스`가 열리고 있다.
지난주 일요일 오후.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파라무스 지역의 한 싱글하우스(사진)에서 오픈하우스가 열렸다. 침실 5개에 풀배스(샤워시설이 있는 화장실) 2개를 갖추고 있어 동네에선 제법 큰 규모의 싱글하우스였다.
기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동산회사 콜드웰뱅커에서 일하는 아나 모리츠라고 밝힌 중개인이 "집을 보러 왔느냐"며 반갑게 맞았다.
이미 집안에는 서너팀이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모리츠는 2층집의 구석구석을 소개하고 넓직한 뒤뜰까지 안내해주고 "이 집을 놓치지 마라(This home is not to be missed!)"고 너스레를 떨었다.
모리츠가 제시한 가격은 59만9000달러. 집값이 피크를 칠 때는 얼마였냐고 묻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75만달러를 호가했다고 답했다. 고점대비 20% 이상 낮은 가격으로 팔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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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에는 이미 수십팀의 고객들이 연락처를 남겨놓고 떠났다. 몇장을 넘겨보니 매입 희망가격들이 적혀있었다. 그런데 50만달러 이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 40만달러 안팎을 희망하고 있었다.
기자가 방명록에 간략한 주소만 적고 나오자 모리츠는 문밖까지 따라 나와 더 궁금한 것이 없냐고 묻는다. 물론 `네고`도 가능하고 다른 물건들도 있으니 관심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주택시장이 수요자 우위로 완전히 바뀌었다. 피크 때 가격에서 20~30%나 떨어진 가격에도 주택 구매자들은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한다. 심지어 추가적인 집값 하락을 우려해 다운페이먼트를 포기하고 계약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교포 박민수씨는 급변한 시장 상황을 체감하고 있다. 박 씨는 집값이 크게 뛰던 2004년 투자목적으로 뉴저지 중부인 프랭클린 파크(Franklin ParK)에 방 3개짜리 콘도(아파트)를 24만4000달러에 구입했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집값이 오르던 시기라 집주인이 요구하는대로 가격을 지불했다.
예상대로 집값은 뛰었고 2006년말엔 29만달러까지 상승했다. 박씨는 좀 더 가격이 오를 때를 기다렸지만, 오히려 집값이 떨어지면서 매도 타이밍을 놓쳤다. 지금은 24만달러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조니 버거씨도 투자목적으로 2006년 뉴저지 남부지역에 위치한 조그만 콘도를 22만달러에 구입했다. 그러나 집을 사자마자 집값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세입자 마저 월세를 제대로 내지 않자 골치가 아팠던 버거씨는 한달전 손실을 무릎쓰고 19만달러에 집을 처분했다.
◇ 떨어진 집값에 20~30% 추가 후려치기는 기본
이처럼 미국의 집값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그래선지 최근 들어선 주택거래가 조금씩 늘어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주택의 매매계약을 기준으로 집계하는 미국의 잠정주택판매가 지난 2월 전월대비 2.1% 증가했고, 클로징 기준으로 집계하는 2월 신규주택 및 기존주택의 판매도 각걱 전월비 4.7%와 5.1% 증가했다.
가격이 많이 싸졌다는 인식과 더불어 낮아진 모기지 금리, 주택 첫 구입자에게 주어지는 8000달러의 세금혜택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집값 하락세가 멈춰설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수요를 압도할 정도로 물량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맨해튼 부동산중개 전문업체인 `할스테드`의 정철영 중개인은 "재고수준이 높다보니 바겐헌터들이 너무 많고, 바이어들이 가격을 30%씩 깎고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한다. 팔겠다는 물량은 넘쳐나지만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바이어들이 집값을 크게 후려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2월말 현재 미국의 주택재고는 9.7개월 분량으로 보통 때의 5개월 분량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차압이 속출하고 있다. 리얼티트랙(RealtyTrac)에 따르면 2월 주택차압은 전년비 29.9%나 급증했다. 더욱이 2월중 거래된 기존주택중 차압(foreclosures)과 숏세일(short sales) 등 헐값 세일(Distressed Sale) 비중이 45%나 달했다. 재고물량이 줄지 않고, `폭탄 세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국의 집값은 계속해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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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값 내년까지 하락..장기적 관점에선 올해가 매수타이밍
뉴욕소재 워버그 부동산의 프레드릭 피터스 대표의 경우엔 뉴욕지역만 보면 주택가격이 바닥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고점대비) 35~45% 떨어진 수준을 바닥으로 보고 있는데, 요즘 일부 계약은 30~32% 가량 떨어진 가격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닥이 멀지 않은 듯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기지 보험사인 PMI는 최근 분석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리세션이 2010년말까지는 전국적으로 주택가격을 계속해서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381개 주요 도시중 98%에 달하는 374곳의 집값이 2010년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고, 50개 대도시중에서 2010년 4분기 집값이 2008년 4분기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 21곳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버슨 PM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리세션이 심화된 가운데 실업률과 주택차압이 증가하고 여기에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재고까지 늘어나고 있다"며 "이처럼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향후 2년간은 집값이 하락할 리스크가 높은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
맨해튼의 리서치 회사인 밀러 사무엘의 조나단 J.밀러 대표는 주택시장 안정은 주식시장 회복이나 리세션 종결 여부보다는 은행들의 대출이 얼마나 빨리 정상화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대출이 타이트할 경우 주택시장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고, 이후 재고를 소진하는데도 몇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할스테드의 정철영 중개인은 "미국의 집값은 맨해튼이 바닥을 쳐야 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미국의 주택시장은 맨해튼이 가장 늦게 바닥을 치고, 회복은 가장 빨랐던 것이 `공식 아닌 공식`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맨해튼의 집값은 작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떨어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2010년 이후 경기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가 매수 시점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높은 재고 수준과 진행중인 실업률 증가세 등을 감안하면 주택시장이 향후 회복되더라도, 이전 수준까지 집값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따라서 미국 주택시장에 대한 접근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반드시 여웃돈으로 접근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미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