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의 물결을 타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버락 오바마(47). 그의 당선은 미국은 물론 세계 역사의 새로운 획을 긋는 대사건이다.
|
지난해 대선 출마 당시만 해도 워싱턴 정가에서조차 생소한 신인에 불과했던 오바마는 초선 상원의원, 흑인이라는 약점을 딛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1986년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네 번 연속 재선에 성공한 노련한 정치인 매케인도 거센 오바마 돌풍 앞에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만 했다.
오바마는 `검은 JFK(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로 각인되며 무섭게 떠올랐다. 미국인들은 50여년 전 미국의 변화를 주창했던 케네디 처럼 젊고, 강한, 그리고 새로운 미국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오바마를 주목했다.
그가 역설한 `변화와 통합, 희망`의 메시지는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대혼란을 겪으며 가슴속에 자리잡게된 패배의식을 어루만지며 미국을 뜨겁게 울렸다.
오바마, 그는 과연 누구인가. 어떻게 흑인으로 `세계의 대통령`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의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나.
◇통합: 태생적 소수, 경계를 허물다
|
버락 후세인 오바마. 올해 47살(61년생)로 아프리카 케냐 태생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 대부분을 편모와 외할머니 슬하에서 보낸 소수파 중의 소수파다. 그러나 그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유능한 변호사이자 시카고대 법학교수 출신의 엘리트로 성장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 일컬어질 만한 이같은 인생 역정은 그 자체로 그가 주창해온 강력한 `희망`과 `통합`의 메시지를 함축하며 인종과 민족, 세대와 계층을 넘나드는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오바마는 이전에 대권 도전에 나섰던 흑인 정치인과 차별화되는 `백인 주류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러닝메이트인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은 오바마에 대해 "정확한 발음과 청결하고 준수한 외모의 흑인이 최초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며 "이는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언급, 논란을 불러 일으킨 적도 있다.
이는 백인 유권자 비율이 66%에 달하는 미국에서 그가 대선이라는 길고 치열한 레이스를 `승리`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동력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흑인이라는 인종적 한계, 심지어 논란이 되기도 했던 `후세인`이라는 중간성마저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통합`의 메시지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의 메시지는 50~60대 베이비붐 세대와 기존 정치에 냉소와 불만을 품고 정치 자체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은 물론 심지어 공화당의 네오콘까지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했다.
◇변화: 시대는 그를 원했다
대선의 승리는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의 연속이었던 오바마 인생의 가장 드라마틱한 한 장면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바마의 인생을 `자가 발전형 변환(self-induced transformations)`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그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뒤 시카고로 이주한 후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정계에 입문한지 불과 4년만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가 이뤄낸 변신은 `변화`를 원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강력하게 소구했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변화를 원하고 있다.
오바마는 전쟁과 경기후퇴(recession)로 얼룩진 실패한 워싱턴 정치에서 탈피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참신한 인물로 대중들에게 다가섰고, 전략은 100% 적중했다.
|
미국 스스로의 변화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오바마는 미국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지만 미국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탄생한 스타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18년전 흑인 최초로 하버드 대학의 법률학술지 `Harvard Law Review`의 편집장이 됐을 때 "내가 편집장에 선출된 것은 미국이 진보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흑인인데다 워싱턴 정가의 신출내기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이 크게 진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의 젊은 세대일수록 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이 덜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백인들은 `피부보다는 자질의 문제`라고 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글로벌 사회조차 미국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부시 정부의 `힘의 우위`를 내세운 일방주의 외교 노선에 신물이 난 지구촌 주민들은 `친절한 미국`을 바라고 있다.
그들에게 `이라크 전쟁은 현명하지 못했다. 빠른 시일 이내에 철군해야 한다`는 오바마의 주장은 변화된 미국의 리더십을 상징하고 있다.
지난 여름 오바마의 방문시 유럽이 보냈던 뜨거운 관심은 이를 잘 말해준다.
베를린 승전탑 부근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국가와 인종, 종교 간의 벽을 허물어 `마음의 냉전`을 무너뜨리자`는 오바마의 호소에 독일인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외교 문외한`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던 오바마가 차기 글로벌 리더로 부각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