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업체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세워진 무역협회가 며칠전 성명을 냈다. 환율이 너무 떨어져서 큰일이니 정부가 특단의 대책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산장사 큰 아들이 기우제를 지내 달라고 부모를 조른 셈이다.
근린궁핍화(近隣窮乏化) 정책이라는 게 있다. 한자로 어렵게 써서 그렇지 뜻은 단순하다. 이웃(近隣)을 가난하게(窮乏化)해서 자기 잇속을 챙기는 정책이란 의미다. 자기나라의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 올리거나 무역장벽을 세워서, 덜 사다쓰고 더 많이 팔아먹겠다는 정책을 비판하는 용어다.
근린궁핍화는 보통 나라간의 이해관계에 대해 논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정부가 환율을 끌어 올리는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국민 대다수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느냐하면, 실상은 그와 정반대일 수 있는 것이다. 물가 때문이다.
그래서 환율을 끌어 올려서 수출업체를 도와달라는 요구는 `온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서 우리에게 달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수출경기가 그렇게도 어려운가? 계속되고 있는 환율 하락세는 사실 수출 호황을 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이 잘 되고, 경기가 미국보다 나아 보이니 환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처럼 환율이 떨어지고 있는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사정이 똑같다. 요즘의 환율은 그래서 수출경기를 결정짓는 요소이기 보다는 수출경기가 낳은 결과물이다.
환율이 떨어지고 원자재값이 오르는 현상은 따라서 우리에게 위기가 아닌 기회의 신호이다. 이렇다 저렇다 걱정만 하기보다는 비가 오면 우산과 장화를, 해가 나면 양산과 짚신을 팔 궁리를 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외환당국 일각에서는 환율하락이 야기하는 `정치적`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는 중소 수출업체만이 유권자라고 생각한다면 명백한 정치적 오판이다. 사료값에 등이 휘는 축산농민도, 소고기를 들여와 파는 수입업자도 모두 유권자다. 주머니를 위협받고 있는 4800만 소비자 모두가 정치적으로 고려해야 할 국민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