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미국 자동차 업계 고위인사 중 유일하게 `빅3` 업체인 GM, 포드, 다임러 크라이슬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지난 1958년 미 해군 조종사 신분으로 전투기를 몰고 포항에서 6개월간 머물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의 나이다. 1932년생인 루츠 부회장은 올해 75세다.
하지만 190cm에 가까운 키, 군살하나 없는 건장한 체구, 상대방을 압도하는 눈빛 등은 그가 75세라는 점을 믿기 어렵게 만든다.
크라이슬러에서 그의 동료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 아이아코카 전 회장, 로버트 이튼 전 회장 등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루츠 부회장은 193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덕에 어렸을 때부터 집안 내에서부터 쉽사리 자동차를 접할 수 있었고 자동차광이었던 삼촌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스위스와 미국을 오가며 성장한 그는 젊었을 때 아버지 속을 꽤나 썩히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22살이 돼서야 대학에 입학했을 정도로 공부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54년 미국 해병대에 입대해 1965년 대위로 전역했다. 이 기간 중 서부 명문 버클리대에서 경영학 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루츠 부회장은 이후 3년간 자동차 배터리 제조업체 익사이드 테크놀로지의 사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폰티악 등의 판매 부진으로 고민하던 GM은 지난 2001년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자동차 인생을 시작했던 GM에 제품개발 담당 부회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빅3 자동차업체를 모두 거쳤지만 루츠 부회장은 한번도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위험을 선호하는 나의 성격이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이사회와 맞지 않았다"며 "그들은 언제나 창의성보다는 아름다운 프리젠테이션을 선호했다"고 답변했다. 정부에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않는 것도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아코카와의 불화설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루츠 부회장은 "실제로는 서로 매우 존중하는 사이였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왜 그가 이튼을 택했냐고 묻자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같았기 때문"이라며 "나는 `이제 내가 책임지고 해보겠다`는 아들, 그는 `아직도 나 죽지 않았어`라고 주장하는 아버지였다"고 웃었다.
그는 75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여가 시간에 골프채 대신 전투기 조종간을 잡는다. 5대의 전투기와 수십대의 유명 차, 오토바이 등을 소장하고 있는 수집광이기도 하다. 특히 아버지가 물려준 1952년형 애스턴 마틴은 손꼽히는 애장품 중 하나다.
10년은 젊어보이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한 번도 내 자신이 75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미소지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GM의 크리스 프리우스 PR 담당자는 "가끔 20살 같을 때도 있다"고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