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10·29부동산 종합대책’이 발표된지 1주일째 접어들면서 집값 급등의 진원지였던 서울 강남(江南)지역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물은 늘어나고 있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가격 하락 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재건축 단지가 밀집된 지역에선 1주일새 호가(呼價)가 5000만~1억원쯤 급락했고, 일부 단지에선 시세보다 2억원이나 떨어진 급매물도 나왔다. 양도세 및 보유세 인상에 부담을 느낀 일부 다(多)주택 소유자는 “손해봐도 좋다. 팔아만 달라”며 투매성 매물까지 내놓고 있다.
서울 강북과 분당 등 신도시에서도 매물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투자심리 위축으로 아파트 거래가 중단됐으며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는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 얼어붙은 강남아파트 단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A아파트 단지 내 쇼핑센터. 재건축을 추진 중인 이 아파트에서 20여년째 중개업을 하고 있는 ‘T부동산’ 장석관 사장은 “가격이 오를 땐 매물이 없어 거래를 못했고, 이제는 살 사람이 없어 거래가 안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10·29대책 발표 이후 급매물이 3~4건 나왔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일손을 놓고 있다. 이 아파트는 최근 1주일새 시세보다 최고 2억원쯤 내린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지난 29일 이전까지 7억5000만원을 호가하던 16평형이 5억7000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는 “다주택자들이 보유세 인상에 부담을 느껴 매물을 내놓고 있다”면서 “하지만, 매수자가 없어 가격이 더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등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중개업소 대부분이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고덕동 ‘S공인’ 송모 사장은 “어차피 문을 열어봐야 거래가 없어 주변의 중개업자 30여명이 단체로 속리산 여행을 떠났다”고 말했다.
◆ 재건축 아파트 가격 급락 =10·29대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는 다주택 보유자들의 급매물이 속속 출시되면서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불과 1주일새 적게는 5000만원, 많게는 1억원씩 가격이 떨어졌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는 이달 초 수십건에 불과하던 매물이 벌써 100여건을 넘어섰다. 가격도 15평형이 5억8000만원에서 4억8000만원까지 내렸다. 개포동 ‘행운공인’ 오재영 사장은 “나올 만한 매물은 거의 다 나왔지만 매수 문의조차 없다”고 말했다.
강동구 고덕동 주공아파트 16평형은 4억8000만원에서 3억8000만원으로, 송파구 잠실동 주공아파트 13평형도 5억3000만원에서 4억3000만원으로 각각 1억원쯤 하락했다. 고덕동 ‘부동산뉴스’ 관계자는 “아예 매입가격보다 싼 값에라도 무조건 팔아만 달라는 집주인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 가격 안정 여부는 지켜봐야 =이처럼 재건축 단지에서 가격이 급락하자 상당수 집주인들은 ‘급하게 팔지는 않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삼성동 B아파트 15평형의 경우 최근 5억1000만원대에 급매물이 1~2건 나왔지만 나머지 매물은 정상 시세인 5억5000만원대에서 유지되고 있다.
삼성동 ‘영동공인중개사’ 박철래 사장은 “일부 집주인은 양도세 부담 때문에 입주 후 1가구 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은 뒤 팔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집값이 많이 올랐던 분당에서도 다주택자들이 매도 의사를 보이고는 있지만, 급매물이 의외로 적어 가격은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일단 강남 집값 상승세의 불길은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집값 안정 여부는 속단하기 이르다는 지적이다. 건국대 조주현 교수는 “지금이 계절적인 비수기라는 점도 가격 안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재산세 상향 조정, 주택거래신고제 등의 대책이 어떻게 시행되느냐가 집값 안정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아직도 시중에는 400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과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부동자금 흡수대책이 없다면 이번 대책도 단기 처방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