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통화량 급증은 자산 거품을 키우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크리스틴 포브스 MIT 교수)
세계 경제학계 최대 행사인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 2023’은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재정·통화 확대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지출 증가 등까지 더해 재정 적자가 불어나고, 이에 따라 구조적으로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올해 AEA 총회는 3년 만에 대면 행사로 치러졌다. 미국 남부에 위치해 겨울에도 따뜻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날씨와 더불어 열기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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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 “저금리·저물가 도래 없다”
서머스 교수는 총회 둘째날인 7일(현지시간)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로 돌아갈 것인가’ 주제를 통해 장기적인 실질 중립금리의 상승을 점치면서 “추후 인플레이션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금리(명목금리-기대인플레이션)는 물가 상승까지 고려한 금리를 말한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인플레이션 혹은 디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잠재성장률 상태의 금리 수준이다. 현재 연준은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감안한 장기 명목 중립금리를 2.5% 안팎(실질 중립금리 0.5%)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게 서머스 교수의 주장이다.
서머스 교수가 가장 강조한 것은 정부 지출의 추가 확대 가능성이다. 그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과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은 정부부채를 상당히 더 많이 쌓았다”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35~40%포인트 오르면 실질 중립금리는 80~100bp(1bp=0.01%포인트) 상승한다”고 추정했다.
실제 미국 예산관리국(OMB)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당시 미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06.0%였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팬데믹 이후 역대급 재정 지출을 단행하면서 이듬해인 2020년 127.7%까지 뛰었다. 2021년의 경우 121.7%였다. 이 수치가 120%를 넘긴 것은 미국 역사상 2019~2020년 2년밖에 없다.
서머스 교수는 또 “미국 정부는 인구 증가 압력에 따라 교육, 의료 등에 재정 확대 경향이 더 커질 것”이라며 “게다가 아시아 국가들은 국방 지출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인구구조와 지정학 우려 역시 나랏돈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202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정부의 재정적자는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발언은 경기 침체와 함께 2010년대와 같은 저금리가 도래할 것이라는 근래 금융시장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머스 교수는 “이전과는 다른 금리 패턴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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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리츠 “글로벌 다자주의 필요”
두 인사뿐만 아니다. 크리스틴 포브스 MIT 교수는 “재정 지출이 과도해져 정부 부채가 급격하게 늘면 장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또 통화량이 갑자기 증가하면 자산 거품을 키우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차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시장에서 커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완화 기대감을 두고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석학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날 글로벌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필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 등은 글로벌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그러나 새로운 지정학 위기는 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까지 연일 미국 중심의 산업정책을 펴는 것을 두고 글로벌 전반에 손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광물 등의 분야에서 미국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의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리스크”라며 “또 (미국의 직접 생산에 따라) 생산비가 높아지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개발도상국들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위험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