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하정민기자] 세계 각국 부동산 가격이 연일 급등세를 이어감에 따라 주요 외신들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각국 주요 언론들은 16일(현지시간)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부동산 버블과 관련한 기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주요 외신들은 지난 몇 년간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던 세계 부동산 시장에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경우 과거 주식 버블 붕괴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충격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WSJ "집값 하락, 닷컴 붕괴 때보다 더 위험"
WSJ는 주택 가격이 급락할 경우 과거 닷컴 버블 붕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동산 시장의 규모가 주식이나 기타 자산 시장 규모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파급 효과도 더 크다는 논리다. ☞
세계 부동산 버블 붕괴 위험
3월 말 현재 미국의 전체 주택 가치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45%에 육박한다. 반면 주식 및 뮤추얼펀드의 가치는 GDP의 82%에 불과하다. 주식 및 뮤추얼펀드 가치는 미국 주식시장이 최고 정점에 올랐던 2000년에도 GDP의 130%에 그쳤다 .
특히 주택은 주식과는 달리 거래가 쉽지 않아 가격이 붕괴되면 은행이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은행권 자산의 40%가 주택담보대출이어서 집 값이 급락하면 은행 자산의 부실화가 초래된다.
주택가격 급락은 소비심리에도 악영향을 미쳐 경제 전반을 억누를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보유주식 가치가 1달러 줄면 4센트의 소비 감소가 나타나지만 주택자산 감소에 따른 소비 위축 효과는 1달러당 무려 7센트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IMF의 마코 테론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집값이 동시 다발적으로 오른 만큼 가격 하락도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SJ는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의 말을 인용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쉴러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서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NYT "과도한 모기지대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같은 날 뉴욕타임스(NYT)도 부동산 버블의 위험을 거론했다. 특히 NYT는 미국의 과도한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문제삼았다. 금리 상승 시대를 맞아 금리변동 위험이 큰 변동 모기지를 이용하고 있는 미국 가계가 언젠가 그 댓가를 치를 것이란 우려다.
NYT는 "미국인들이 전후 최저 수준인 모기지 금리를 활용 주택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그러나 "시중금리 상승으로 모기지 금리도 상승하면 주택 구입자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30년만기 모기지를 통해 30만달러짜리 주택을 지금 구입할 경우 미국인들은 현재 금리로는 월 1250달러만 내면 된다. 그러나 금리가 오를 경우 2010년 경부터는 지금의 두 배에 가까운 최고 2100달러를 매달 납부해야 한다. 이 경우 상당수 미국인들이 파산에 처할 것이며 미국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NYT는 경고했다.
NYT는 국제 금융계에서 `닥터 둠(Dr.doom)`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투자전략가 마르크 파버의 발언도 인용했다. 마크 파버는 1987년 블랙먼데이, 1990년대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파버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며 "미국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전국적 현상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 국한된 국지적 현상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 "부동산 급등, 세계 역사상 최고 버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가세했다. 이코노미스트는 16일자 최신 호에서 "최근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버블"이라고 우려했다. 현재의 부동산 버블이 16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1920년대 미국의 자동차주 버블, 1990년대 말의 전 세계적인 IT버블을 능가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도 WSJ와 마찬가지로 주택 가격이 급락할 경우 과거 닷컴 버블 붕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년간 전 세계 부동산 관련 자산이 무려 30조달러가 늘어 현재 70조달러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스페인,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부동산 자산의 총 규모가 그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능가한다고 우려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임대 수익과 소득을 감안할 때 많은 나라의 주택 가격은 이미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계속 뛰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주택을 팔아 얻을 수 있는 자본 이득이 사라지면 경기를 지탱하는 소비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는 세계 각국의 고용 시장에도 심각한 문제를 몰고올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01년 이후 새로 생긴 일자리 가운데 5분의 2는 건설이나 부동산 중개와 같은 주택 관련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주택 값이 떨어지면 주택관련 일자리도 크게 줄 수 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수치상 주택 가격은 실제보다 더 부풀려져 나타나기 때문에 주택 거품 붕괴로 인한 충격이 경제 지표에 반영되는 폭도 크다고 지적했다.
집값 대비 임대가격 비율이 날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동산 위험을 고조시킨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현상은 미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아일랜드, 벨기에 등 전 세계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집값대비 임대료 비율은 35%에 달해 1975~2000년 25년간 평균치보다 높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