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기획해 선보인 소셜커머스용 숙박상품(평창코업스위트하우스)은 이틀 만에 1000실 넘게 판매돼 단 기간 판매기록을 세웠다. 또 공연티켓과 숙박을 묶은 문화 패키지는 해마다 판매 수가 30% 꾸준히 늘어나는 효자상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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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작품은 닮는다. 그가 만들어낸 여행상품들도 다르지 않다. 꼼꼼한 그와 닮아있다. 뜯었다, 고쳤다, 부쉈다.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패션만큼 여행상품도 유행에 민감하죠. 이를 테면 최근들어 골드미스와 꽃중년 남성들이 큰 소비층으로 떠올랐잖아요. 이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접목시켜 여행상품을 만들어내는 식이죠. 강남 부티크호텔인 ‘라까사’와 근처 가로수길 레스토랑의 브런치 맛보기 일정을 담은 숙박상품도 이런 식으로 탄생됐어요.”
홍 대리는 고객들의 질문에 특히 귀를 기울인다. 입사 당시 전화상담(OP)과 마케터 일을 함께 병행했던 그는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2009년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을 당시 선배에게 혹독하게 일을 배웠어요. 전화상담부터 기획 일을 함께 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습득하게 된 셈이죠. 잘 팔리고, 좋은 상품은 결국 고객들의 입에서부터 나오죠.”
이 때문에 여행후기도 꼼꼼하게 챙겨 본다. 기왕 할거라면 제대로 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진도 직접 찍는다. 볼거리, 맛집 등 주변 콘텐츠 확보도 그의 일 중 하나다.
“한 달에 1~2번 단위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어요. 직접 발로 뛰죠. 주변 볼거리, 관광명소도 직접 방문하고 맛집까지 담아옵니다.”
휴대폰 저장사진 2000여장
다녀온 여행명소만 200곳 넘어
◇결혼, 또 다른 시작
첫 직장은 ‘야놀자닷컴’이었다. 2007년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직장인이 됐다. 젊은이들의 데이트코스를 개발하거나, 국내숙박(모텔) 콘텐츠 확보 업무를 맡았다. 회사라고 하기 보다 놀이터 같았다. 하지만 그 해 대학시절 교제하던 친구와의 결혼을 결심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장인 어른을 만나 뵈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무턱대고 ‘야놀자닷컴’이라는 회사를 다닌다고도 할 수 없었고요. 모텔이나 데이트코스 등을 소개하고 상품화하는 업체였는데 과거 당시만 해도 모텔은 시내 호텔들에 가린 변두리에 불과했어요. 한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죠.”
그해 12월 홍대리는 제조업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전환점을 맞게 됐다.
“거래처였던 지멘스 한국영업본부장이 국내 여행지를 소개해달라고 물었을 때 바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 큰 자극이 됐어요. 그 후부터 우리나라 명소를 자주 찾아 다니게 됐죠. 그러다가 인터파크투어 공채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해 뽑혔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행운아인 셈이죠”
단순 상품판매 아니라 감성 공유하는 것
그러면서 슬쩍 휴대폰을 보여준다. 그가 자랑스럽게 내민 휴대폰에는 그가 다녀온 여행지의 이미지가 2000장은 족히 저장돼 있었다.
“핸드폰 아이폰 사진기능을 보면 직접 촬영한 장소를 우리나라 지도에 저장하는 기능이 있는데요. 이를 활용해 전국 지도에 빠짐 없이 핀을 꽂는 게 목표입니다. 현재까지 핀으로 저장한 주요여행명소는 200여곳 정도 됩니다.”.
최근 들어 그에게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설계 공부 중이다.
“바다도 있고 햇빛 드는 좋은 곳에 펜션을 짖고 노년 생활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거죠. 그들의 얘기도 듣고, 배우면서 그렇게 사는 게 꿈입니다. 또 여행 기회가 적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여행이 어려운 연중 행사가 아닌 진정한 휴가가 될 수 있도록 저렴하게 방을 대여할 생각입니다. 기자님도 놀러오세요. 특별히 싸게 드릴게요. (웃음)”
◆홍순찬 대리는?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몸소 실험하고 체험하는 활동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당시 취업이 잘된다는 무역학을 전공했다. 학비는 직접 아르바이트 해 충당했고, 남들보다 늘 바빴다. 인터파크투어에서는 지난 2009년 200대1의 경쟁을 뚫고 입사, 국내사업본부 국내여행 및 숙박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