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와 상점들이 깔끔하게 늘어선 버밍햄에는 일주일에 단 하루 목요일에만 문을 여는 옷가게가 있다. 티셔츠 하나에 1000달러 한다는 이 가게는 이들 도시의 소비 여력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입증한다.
디트로이트가 미국 내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악명이 높은데 반해 트로이와 버밍햄은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꼽힌다. 불과 30분 거리에 위치한 이들 도시의 격차는 전형적인 `사회 양극화`를 보여준다.
우드워드를 따라 달려 `빈곤의 경계선`인 8마일에 다다랐다. 미국의 유명 가수 에미넴의 고향으로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8마일. 도로 표지판에 적혀 있는 `8마일`이라는 표지판이 없더라도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통해 충분히 그곳이 디트로이트가 시작되는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자동차 제국의 몰락..`선연한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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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부로 들어서니 제법 도시의 위용이 갖춰져 있다. 쓸쓸하게 늘어선 자동차 수리소가 즐비한 8마일과 달리 웨인 주립 대학교, 디트로이트 미술관, 역사 박물관 등이 자리잡은 시내 중심부는 화려했던 과거와의 소통을 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한 생동감의 부재는 `몰락의 상처`를 상기시켰다.
1967년 흑인폭동,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일제 소형차의 수입급증으로 1978년~1980년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생산은 40% 급감했다. 이에 따른 실업률 급증으로 시의 재정은 파산 직전에 이른다. 이후 재건에 힘쓴 결과 1982년 이후부터는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 현재. 디트로이트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경기악화와 기록적인 국제유가로 더욱 어려워졌다.
올해 미국내 자동차 판매는 1500만대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지난 1993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지난해 1620만대에 비해 8% 급감한 것이다.
전체 시장 규모만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업체의 계속되는 역습으로 미국 시장내에서 `빅3`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지난 5월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의 미국내 자동차 판매는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계 자동차 메이커들에 역전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따른 `빅3`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은 디트로이트의 민심을 더욱 흉흉하게 만들고 있다.
GM은 올해까지 공장근로자 3만4000명을 내보내기로 한데 이어 지난달 말 픽업트럭과 스포트유틸리티차량(SUV) 북미 공장 4곳을 폐쇄하고, 1만9000명을 추가 감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드는 오는 2012년까지 14개 공장을 폐쇄하고 3만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크라이슬러도 내년까지 1만3000명 감원을 추진중이다.
◇생존의 몸부림..`희망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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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일본차의 경쟁력에 밀리고, 픽업트럭은 고유가의 희생양이 된 현 위기의 타개책으로 GM은 `그린 정책(Green Strategy)`을 추진중이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2010년 11월 출시를 목표로 개발중인 전기충전 자동차 `시보레 볼트`. 최근 공식 석상에서 "시장 환경의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전략을 세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토로한 왜고너 회장은 매일 보고를 받으며 수시로 챙길 정도로 `볼트`에 사활을 걸었다.
`그린 정책`을 통해 부활을 꾀하고 있는 GM과 마찬가지로 `옛 영화의 도시` 디트로이트 곳곳에서도 회생을 향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시내 중심 유명 자동차 디자인 스쿨인 미시간 CCS(College for Creative Studies)대학 옆에 자리잡은 한 건물. 디트로이트의 쇠락과 함께 최고급 호텔에서 학생들의 하숙방으로 전락했던 이 건물은 최근 럭셔리 콘도미니엄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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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는 일식집 개점을 위한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일식집 주인이자 현지교민 김선영씨(36)는 "우리 부부는 디트로이트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믿고 있다"며 "최근 동생도 디트로이트에서 리모델링한 콘도미니엄을 샀다"고 말했다.
시내 중심부 뿐만이 아니다. 디트로이트로부터 확산된 슬럼화로 황량했던 9~10마일 부근의 펀데일과 11~12마일 부근의 로얄 오크도 점차 상업화를 꾀하고 있다.
부촌과 빈민촌의 경계선상에 놓인 이곳은 젊은층의 백인과 흑인이 공존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빈티지숍과 인도, 타이 등 여러 국적의 식당이 들어선 분위기는 맨해튼과 닮아 있었다.
김씨는 "3년전만 해도 슬럼가였던 펀데일이 이렇게 변모할 줄은 몰랐다"며 "예전에는 발걸음하지 못했던 이곳에 가끔 식사하러 들르게 됐다"고 말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국 자동차 산업이 `그린 정책`으로 부활의 시동을 걸고, 디트로이트가 다시 품은 희망으로 화려한 옛 영광을 되찾게 될 그 날을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