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싱거워… 미뤄뒀던 ‘미드’ 밤 새 볼거야!

데이트보다 더 짜릿한 시리즈 6
  • 등록 2007-09-21 오후 2:04:21

    수정 2007-09-21 오후 2:04:21

[조선일보 제공] 앞뒤로 빠진 이만 잘 맞추면 유례가 드문 추석 황금연휴다. 회사 사정은 뻔하고 해서 눈치보다 뒤늦게 근 일주일 정도의 휴일을 얻어냈다지만, 아뿔싸 애초에 계획했던 일본 여행은 비행기 표가 없어 불가능하다. 아, 어디 경치 좋은 펜션에 가서 오랜만에 밀린 독서나 할까도 생각했지만 애인도 없이 혼자서 괜한 궁상인 것 같고, 그렇다면, 좋았어, 가는 거야! 이번 연휴에는 시종일관 ‘갸르릉’ 대는 우리 집 고양이를 옆에 끼고 가히 초인적인 체력으로 그간 미뤄뒀던 미드(미국 드라마)를 ‘완전 정복’하리라. 
 
▲ 식스 핏 언더

 
 
미션 №1 ‘식스 핏 언더(Six Feet Under)’

‘아메리칸 뷰티’의 각본을 써,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알란 볼에게 TV에서 마음껏 재량을 발휘해 보라고 해서 만들어진 드라마 ‘식스 핏 언더’. 장의사 가족을 다룬 이 드라마 만큼 호불호(好不好)가 심하게 갈리는 작품도 드물다.

혹자는 TV 드라마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성을 보여준 드라마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스펜스나 액션은 둘째 치고 심지어는 감칠맛 나는 사랑 얘기 하나 없는, 오프닝과 포스터만 그럴싸한 ‘쿨해지세요’ 식의 강권에 가까운 메시지 아니냐고 혹평을 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호불호를 뒤로 하고 마지막을 향해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시리즈 피날레 에피소드는 TV 드라마 역사상 가장 잘 만들어진 엔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목은 미국에서 관을 묻을 때 6피트 깊이로 구덩이를 파는 데서 유래됐다.
 
▲ 소프라노스

 
미션 №2 ‘소프라노스(Sopranos)’

사실 ‘소프라노스’는 언젠가 한번 도전을 했던 적이 있다.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우리 시대 최고의 미국 드라마라는 타이틀인 만큼, 그 명성을 몸으로 체득해 보자는 뜻이었는데, 웬걸 처음 두 편을 보니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배불뚝이 천생 사내가 파자마 차림으로 오리랑 물장구치다 궁시렁 궁시렁 정신과 상담이나 받고 있어서, ‘뭐야 역시 HBO식 아트잖아’ 하고 내친 적이 있단 말이다. 인생의 여러 단계 중에 영상물 앞에 ‘예술’ 자가 붙는 것에 움찔움찔하던 시기였다. 아아, 하지만 이내 다시 시작한 미션 작파 ‘소프라노스’는 내 작지만 소중한 한 자락 행복으로 이어졌으니. 사내답지 않게 오리들이나 희롱하던 그 배불뚝이 사내가 이토록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줄 미처 몰랐다. 기타노 다케시, ‘CSI’의 길 그리섬, ‘NCIS’의 깁스, ‘CSI: 마이애미’의 호레이시오와 함께 최강의 아저씨 훈남 라인업에 당당히 등극할 만하다. 미국 뉴저지 마피아 조직원 형님들의 이야기인 ‘소프라노스’는 잘라 말하면 미국판 조폭 드라마인데, 그 우직하고 단순한 형님들의 세상사는 이야기가 가히 재미있을 뿐더러, 조폭들의 입을 빌어 농담과 풍자로 세상을 희화화하는 제작진의 제스처는 천부적일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토니 소프라노스 형님, 바쁜 회사 생활로 인해 제대로 TV 앞에도 앉지 못하는 내 비루한 인생에 하이킥을 날려 주세요.


미션 №3 ‘닙턱(Nip Tuck)’

갖은 미국 드라마를 통해 잔인함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이제 엔간한 장면에는 움찔하는 법도 없게 되었다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 ‘닙턱’(성형수술을 뜻하는 은어)은 다르다. 태양의 도시 마이애미에서 성공한 성형외과의로 살아가는 대학친구 션과 크리스천의 메스는 실사와 다름없는 특수효과로 무장한 성형수술의 현장을 휘어 갈기며 아주 정교하게 재현해낸다. 왜 난도질 당하는 것보다는 아주 조심스럽게 칼이 살을 파고 들어가는 맵시(?)가 더욱 아찔하지 않던가.

남자들마저 고개를 돌리게 하는 성형수술의 재현장면과 이게 어떻게 유료 채널이 아닌 곳에서 방영이 됐을까 싶을 정도로 야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오히려 그런 자극적인 장면들이 탄탄한 시나리오와 극적 재미에 녹아 들어 그다지 튀지 않으면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이다.

중독성이 꽤 되는 만큼 작파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아,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닙턱’의 음악을 고르는 센스 또한 이 드라마를 보는 큰 재미일 듯.


미션 №4 ‘디 오시(The O.C)’

인기 미국 드라마 ‘하우스’의 닥터 하우스가 극중에서 이 드라마 ‘디 오시’(The Orange County)를 두고 그랬다. “뭐랄까, 꼭 볼 필요는 없지만, 보다 보면 은근히 중독이 되는 바람에 계속 보게 되는 드라마”라고.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부자 마을 오렌지 카운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디 오시’는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도 많고 그럭저럭 잔재미도 풍부해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아주 그만인 드라마이다. 물론 고등학교 아이들이 나오는 드라마의 운명상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해서 동부 서부로 나뉘게 되는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드라마의 존폐 자체가 흔들리는 딜레마를 ‘디 오시’ 또한 안고 있긴 하지만, 사고뭉치에 반항에 일탈을 거듭하며 귀엽고 예쁘게 성장해 가는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을 보다 보면, 오히려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미션 №5 ‘앙투라지(Entourage)’

“우리 교민들도 많이 사는 뉴욕 퀸스 출신의 사내 녀석 네 명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의 대성을 노리며 할리우드에서 새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앙투라지’이다”라고 말하면 좀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남자판 ‘섹스 앤 더 시티’로 불릴 수 있는 ‘앙투라지’는 천상 사내녀석들이 어떻게 하면 인생을 좀 재미나게 살아볼까 하는 딱 유랑극장 코드다. 보는 내내 혀를 끌끌 차지만 정작 미워할 수는 없는 사내녀석들을 그리고 있다. 제목은 ‘측근’이라는 뜻.
 
 
▲ 배틀스타 갈락티카

 
미션 №6 ‘배틀스타 갈락티카(Battlestar Galactica)’

신개념 SF라고 하면 과학적 논리에 맞건, 맞지 않건 간에 신기의 테크놀로지를 주무기로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 ‘배틀스타 갈락티카’는 그런 면에서는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구형 전투함이었던 관계로 갈락티카호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그간 SF라는 장르를 도외시했던 사람들이, 마니아가 가장 많다는 본격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기로는 ‘배틀스타 갈락티카’만큼이나 훌륭한 소재는 드물다. 본격적인 성인용 SF를 표방하면서 가장 드라마적인, 아니 가장 연속극적인 재미를 배가시키는 미덕을 발휘하는 이 드라마는 SF에 대한 문외한에서부터 마니아까지 모두를 포섭할 수 있는 진짜 물건이다. ‘배틀스타 갈락티카’는 당신의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 맘먹고 작파하기에 이보다 더 훌륭한 도전 과제는 드물 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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