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싱가포르는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북한이 처음부터 선호했던 곳이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접근 가능한 제3국 중에서 인프라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라는 이유로 미국이 밀었던 곳이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를 가 본 적이 없다. 내달 12일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이 김 위원장의 첫 싱가포르 방문이다. 싱가포르의 눈부신 경제성장 결과를 김 위원장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면,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싱가포르는 정치적으로 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성공한 이례적인 모델이다. 김씨 일가가 북한을 통치하는 것처럼 싱가포르 역시 린콴유 전 총리 일가가 대를 이어 싱가포르를 다스린다.
싱가포르도 외형상 선거를 치르고, 정당과 의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속내는 1인 가족 독재다. 의회는 사실상 정권의 거수기 노릇에 불과하다. 북한처럼 노골적인 세습정치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의 경제체제도 서구식 모델과 차이가 있다. 싱가포르는 경제개발 분야에서도 정부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모델이다. 사회주의 경제모델처럼 정부가 직접 사회 곳곳을 직접 관리하고 운용한다. 특히 싱가포르 최대 기업인 국영투자회사 테마섹의 최고경영자(CEO)도 리 총리의 부인인 호칭 여사가 맡고 있다. 리 총리 가족이 정부권력과 경제권력을 모두 독점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싱가포르는 매우 성공적인 경제성과를 이뤘다. 국토 면적이 서울의 1.2배 수준인 721.5㎢에 불과하고, 인구도 561만명 뿐이지만,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2960달러(2016년 기준)에 달한다. 아직 3만달러에 못미치는 한국보다 훨씬 높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경제모델을 도입하지 않고서도 눈부신 경제성과를 이룩한 곳이 싱가포르다.
실제로 북한은 싱가포르의 경제모델을 연구해왔다. 지금은 처형된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이 2002년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서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과 함께 찾았던 곳이 바로 싱가포르다. 정부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의 야경을 직접 눈으로 본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이상, 앞으로 북한의 경제개방에도 싱가포르가 일정의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은 싱가포르와 1975년 정식 수교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