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06년 현재 그의 제철소는 전세계 60개국 이상에 퍼져 있다. 32만명의 종업원이 쉼없이 생산하는 철강제품은 1억1000만톤, 매출은 886억달러에 달한다. 전세계 모든 철강업체들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한다.
`해가 지지않는 강철 제국` 아르셀로 미탈 그룹의 창립자 락시미 미탈 회장(사진)은 철강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느 중이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핵심에도 그가 자리잡고 있다.
◇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동방의 철을 달라`
락시미 미탈 회장은 여전히 허기져 있다. 2004년 미국 최대의 철강회사 인터내셔널 스틸 그룹(ISG)을 인수해 연간 생산량 7000만톤의 세계 최대 철강 회사가 됐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1위(미탈) 업체가 비슷한 덩치의 동종업계 2위(아르셀로)를 집어 삼키는 인수를 단행,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사들여 몸집을 불리는 인수·합병(M&A)의 고전 문법을 파괴해버렸다.
미탈 회장은 생산 능력이 현재 아르셀로 미탈 그룹의 두배는 되야 포만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르셀로 미탈은 2015년까지 연간 철강 생산 능력을 2억톤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세계 2위인 신일본제철(3370만톤)과 3위 JFE(3202만톤), 4위 포스코(3120만톤)을 모두 집어삼켜야 충족되는 목표다. 올해만 해도 그는 벌써 멕시코 최대 철강업체인 시카르차를 인수했고, 미국 3위 제철사인 AK스틸 인수를 추진중이다.
북미와 유럽 대륙의 철을 죄다 삼킨 미탈 회장은 이제 `동방 정책`을 부르짖고 있다. `앞으로 철강산업의 성장을 주도할 지역은 아시아`라고 강조한다. 실제 벨기에의 국제철강연구소는 중국의 철강시장이 2008년 전세계 소비의 35%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한다.
나머지 주요 철강업체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아르셀로 미탈의 뒤를 잇는 철강사인 신일본제철과 JFE, 포스코(005490), 바오산 강철 모두가 미탈 회장의 동방정책 기착지인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다. 이 분야의 M&A 시장이 미탈 회장의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당연하다. 올초 아르셀로 미탈이 신일본제철과 포스코 인수에 관심을 표명하자 해당 업체들은 전전긍긍했다.
한번 문 먹이는 결코 놓지 않는 락시미 미탈의 진돗개 같은 성격도 주요 철강사들을 떨게 한다. `유럽의 왕관`이란 평을 듣던 아르셀로 미탈을 인수할 당시 그는 유럽 각국은 물론 시민들까지 나서 반발하는데도 불구하고 6개월간 인수전을 벌여 기어이 `왕관`을 벗겨냈다. 카자흐스탄 철강 공장을 인수할 때는 불법 의혹을 사기도 했다.
주요 철강업체들의 상황이 적대적 M&A 위협에 노출돼 있는 점은 `철강 빅딜` 가능성에 더욱 힘을 싣는다. 일본에서 외국 기업이 현금이 아닌 주식교환을 통해 기업을 매수할 수 있는 삼각합병이 허용됨에 따라 신일본제철은 그동안 성을 방어해주던 해자를 메워야 한다.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포스코의 성곽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철강산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지정해 외국 자본 비율이 50%가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800여개의 철강사가 난립한 진형은 각개격파 당하기에 딱 알맞다.
`먹히지 않기 위해` 주요 철강업체들도 M&A 방어책 마련에 부산하다. 철강사들의 생존전략은 `연대`다. 아르셀로의 합병으로 얼떨결에 2위 명패를 받아든 신일본제철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제휴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전통적인 우방인 포스코와는 물론 잠재적 주적인 아르셀로 미탈과도 제휴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포스코는 신일본제철과 세아제강, 우리은행에 이어 동국제강, 현대중공업 등과 백기사협정을 맺고 아르셀로 미탈의 적대적 M&A 시도에 대항을 채비를 갖추고 있다. 중국 또한 정부 주도로 철강사 통폐합 작업에 분주하다. 중국 최대이자 세계 5위 철강사인 바오산 강철을 세계 3위권으로 키우는 것을 비롯, 난립한 철강사를 연간 생산량 5000만톤 규모의 철강회사 5~6개로 재정비한다는 복안이다.
◇`규모의 경제가 M&A의 힘`..印 부상
이처럼 철강업계의 M&A가 활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있다.
현재 전세계 상위 5개 제철업체가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20%. 3대 업체가 전체 시장의 78%를 장악하고 있는 철광석 시장이나 5대 기업이 전체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과는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전통적으로 철강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취약하고, 수요업체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밀리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세계에 공장을 거느린 아르셀로 미탈은 모든 구매 주문을 유럽 본사가 취합해 한번에 대량 주문을 냄으로써 원자재 구입 비용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인도 업체들이 M&A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과 2000년대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국영기업이었던 철강회사들을 민영화하면서 매물이 대량 출하된 것도 M&A 경쟁을 격화시킨 요인이다.
자동차회사 등 철강 소비 업체들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형 철강업체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도 철강업계의 M&A가 활발해진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양적팽창에 거부 반응도..그러나 먹히면 `끝장`
이들은 아르셀로 미탈과 코러스 등 초대형 철강사들의 수익성이 세계 평균보다 낮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연간 철강 생산량이 1100만톤에 불과한 세계 20위권 업체인 대만 차이나스틸이 세계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을 내놓는 이들이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제 아무리 잘 나가는 철강사라 하더라도 먹혀버리면 끝장이라는 것. 그리고 잡아먹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상대가 창업 이후 단 한번도 제철소를 짓지 않고 29차례의 M&A를 통해 회사규모를 140여배나 불린 락시미 미탈 회장이라는 점이다.
◇비철금속도 M&A 바람..남아도는 실탄으로 `공방전` 조짐
M&A 바람은 철강의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회사, 나아가 비철금속 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아르셀로 미탈이라는 확실한 주연이 존재하는 철강업계와는 달리 원자재 및 비철금속 업계의 인수전은 절대 강자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공식 확인된 M&A 가운데 가장 굵직한 것은 미국 최대의 알루미늄 제조업체인 알코아가 캐나다 라이벌사인 알칸을 매수, 러시아의 루살에 내준 세계 1위 차리를 되찾으려는 움직임 정도지만 루머는 훨씬 떠들썩하다.
지난해에는 세계 2위 광산업체인 앵글로 아메리칸이 3위 업체인 리오 틴토와 4위 엑스트라타를 인수할 것이란 설이 돌기도 했고,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BHP 빌리튼과 리오 틴토가 알코아나 알칸의 인수 주체로 나설 것이라는 루머도 나온 바 있다. 최근에는 BHP가 리오 틴토에 1000억달러 규모의 적대적 인수를 시도할 것이라는 설이 돌기도 했다.
이들 업계의 M&A 경쟁이 이처럼 혼전 양상을 띄는 것은 최근 몇년 동안 원자재 가격이 수직 상승하면서 자금력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든 경쟁업체를 인수할 여력을 가지다보니 예전 같으면 `터무니 없다`는 반응을 보일 루머조차 설득력을 얻는다는 분석이다. BHP의 리오 틴토 인수설이 돌자 실제로 해당 업체의 주가가 폭등한 것이 좋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