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박기수기자] `거상(巨商)` 김정태 국민은행장(57)이 10월의 마지막 영업일인 29일 35년간의 금융맨 생활을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지난 69년 조흥은행에 입사해 그의 열정적인 업무 스타일 탓에 숱한 화제를 뿌리며 `큰 장사꾼` 김정태로서 입지를 굳혀왔다.
그는 특히 34살의 나이의 최연소 임원으로 대신증권 상무로 오른 뒤 동원증권 사장, 주택은행장, 그리고 통합 국민은행장으로 지난 2001년 11월부터는 국내 최대 금융기관을 이끌어왔다.
그의 경영스타에 대해 ‘시장주의’, ‘원리원칙자’, ‘주주가치 신봉자’라는 좋은 말들이 뒤따랐지만 조직통합과 공익성 면에서 소홀했다는 점이 그의 35년 금융사에 `옥의 티`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후계자를 장기계획에 의해 만들겠다던 그의 구상은 감독당국의 ‘회계기준 위반판정’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급기야는 퇴임까지 맞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 "관치 대신 시장"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그간 국내외 시장, 특히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것은 그의 시장 마인드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과거 개발주의 시대에 은행의 역할은 정부 정책의 종속변수로 단순히 자금중개 기능, 그것도 사실상 정부의 ‘시녀’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 행장은 이런 정부의 품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은행의 이미지를 `기관`에서 `기업`으로 확실히 돌려놓는 데 주춧돌 역할을 했다. 주주가치와 배치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과감히 반대의 목소리를 던졌다. 선진경영기법을 영업전선에 도입하고, 뉴욕증시에 상장해 국내은행도 세계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처음 가는 길이라 쉽지만은 않았다. 그간 익숙하지 않은 수익 추구에 대해 감독당국과 국민들로부터 비난도 적지 않았다.
특히 작년 LG카드 사태로 인해 정부가 은행권에 협조융자를 종용했을 때 "일정 부분은 지원하겠지만 은행 경영을 위협하는 수준에 참여할 수 없다"며 선을 분명히 그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김 행장이 외국인을 등에 업고, 은행만 살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를 회고하는 한 임원은 “김정태 행장이 마치 LG카드 협조융자 자체를 거부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사실은 김 행장이 일정 부분은 먼저 지원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정부가 계속 추가적인 지원을 압박해 마지막에 명확한 한계를 그은 것”이라며 시장을 외면했다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관치에서 시장으로 가는 격변기의 중앙에 그가 서 있었던 셈이어서 한쪽에서는 비난이 일기도 했지만 그의 시장주의적 경영은 은행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아름다운 뒷모습
“35년간 할 만큼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물러나겠다. 강정원 내정자께서 훌륭한 분이시니 잘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 행장은 행장 재직 시절에 주택은행에 대한 편향설, 조직통합 책임회피, 스톱옵션 행사 시기, 회계위반 등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국민은행이 후임 행장의 지휘 아래 더욱 발전된 은행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이날 오전 9시30분경 마지막 출근을 위해 밝은 모습으로 국민은행 본관으로 들어선 김 행장은 이임사 때문에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달 마지막 월례조회에서 밝혔듯 “은행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태산 같지만 매일 새로운 물이 흐르듯, 흐르는 강물처럼 물러나겠다”는 그의 심정은 변함없어 보였다.
김 행장은 이날 임시주총이 끝난 뒤 주요 부서를 돌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오후 5시 이임사를 끝으로 35년간의 금융인 생활을 접고 휴지기로 들어간다.
그는 최근 "일을 좀더 하시지요’라는 질문에 “씰 데 없는 소리, 씰 데 없는 소리”라며 업계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최근들어 다시 흡연할 만큼 건강히 회복되긴 했지만 동부 이촌동에 노모를 모시며 그간 가꾸어 온 화성 농장을 오가며 자연인 김정태의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