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주영(29)씨는 백화점에서 정장을 구입하며 수선을 요구했다. 일반 양복보다 윗옷의 허리선이 잘록 들어간 캐주얼 정장이었는데, 김씨는 그보다 1㎝를 더 줄여 달라고 주문했다. 그가 고른 드레스셔츠는 반질거리는 원단이 마치 여성용 브라우스 같았다. 김씨는 “활동에는 불편하지만, 세련된 스타일이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는 회색 정장을 한 벌 더 구입했다.
롯데백화점은 올가을 본점 5층 매장에 남성전용 액세서리 코너를 마련할 계획이다. 남성복 매장에서 판매하던 장식용 버튼과 열쇠고리의 매출이 늘자 아예 별도 매장을 꾸민 것이다. 남성복 매장도 더 확장할 계획이다. 임형욱 매니저는 “20~30대 남성 사이에 화려한 스타일의 패션이 유행”이라며 “소비불황 중에도 이들 제품의 신장세는 폭발적”이라고 말했다. 남자들의 패션이 화려해지는 이른바 ‘공작새 혁명’(peacock revolution) 트렌드가 소비불황의 탈출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 화려해진 남성패션이 소비불황의 탈출구
올해 활동성을 강조한 전통 스타일의 남성정장 판매는 제자리 걸음이다. 반면 몸에 짝 달라붙는 캐주얼 정장은 상반기에 2배 이상 판매가 늘어난 것으로 유통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남성 캐주얼 브랜드 인터메조는 가을 시즌에 대비, ‘익스트림 슬림 컬렉션’을 선보였다. 기존 슬림형 정장의 재킷 품을 무려 2.5㎝나 더 줄였다. 인터메조 관계자는 “남성 사이에서 ‘몸짱’ 열풍이 불며 몸매를 드러내는 스타일이 인기”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루키블루’와 ‘MSF’ 등 170㎡ 규모의 20~30대를 겨냥한 남성 패션전문 매장을 운영 중이다. 남성패션 바이어인 남병진 과장은 “최근 남성 잡화는 유행이 여성보다 더 빨리 변하기 때문에 소비도 훨씬 활발하다”고 말했다.
남성패션 시장이 폭발하자 여성복 브랜드가 성(性)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여성 정장 브랜드 타임은 남성용 ‘타임 옴므’을 선보였다. 여성복을 주로 만들던 캐주얼 브랜드 써스데이 아일랜드는 ‘써스데이 아일랜드 포 맨’, 코데즈컴바인은 ‘코데즈컴바인 포맨’, 빈폴은 ‘빈폴 옴므’를 내놓고 있다.
◆ 남성용 핸드백도 인기
한때 휴대전화에 밀려 사라졌던 시계도 남자들의 손목에서 부활했다. 지난 4월 갤러리아백화점은 남성시계 전문 매장을 오픈했다. 김재환 바이어는 “요즘 남성은 시계는 자신이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산다”고 말했다.
삼성패션연구소 김정희 팀장은 “남성패션은 활동성이 가장 중요했지만, 최근엔 스타일이 더 중시된다”며 “튀는 것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특징이 패션에서도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작새 혁명(peacock revolution) = 남성 패션이 화려해지는 경향을 일컫는 말. 수컷 공작새의 깃털이 암컷보다 아름다운 것에 빗댄 표현이다. 1960년대 칼럼니스트 조지 프레지어(Frazier)가 미국 남성 패션 트렌드를 분석하며 처음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