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국제결제은행(BIS) 세계금융제도위원회(CGFS)에서 나온 보고서를 통화정책의 적정 시점을 찾는데 유효한 참고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거시건전성 정책은 금융 사이클에 연동해서 결정될 필요가 있는 만큼, 현 상황은 완화적인 정책기조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최근 BIS가 거시경제상황과 금융 사이클을 활용해 작성한 ‘거시건전성 정책수단(MPIs·Macroprudential Policy Instrument)의 활용방안에 대한 5가지 시나리오’를 소개한 후, 현재 우리나라가 시나리오 5에 해당돼 완화적인 거시건전성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거시건전성 정책이란 금융 사이클에 연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아울러 금융 사이클이 어떤 단계에 도달했느냐에 따라 정책 역시 결정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금융 사이클은 일반적인 거시경제상황과는 다른 양상을 띌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사이클은 일반적인 경제상황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고 변화의 속도도 느리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거시경제상황과 금융 사이클에 따라 5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거시경제가 양호하고 금융경제 역시 호황기에 들어섰을 때(시나리오 1), 거시경제는 취약하지만 금융시장은 호황기에 들어섰을 때(시나리오 2), 거시경제가 취약하고 금융시스템 역시 위기일 때(시나리오 3), 거시경제가 양호하고 금융시장은 위기 없는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시나리오 4), 거시경제는 취약하고 금융시장은 위기 없는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시나리오 5)다.
금통위원은 이 보고서가 통화정책의 적정 시점을 찾는데 참고할 만하다고 밝히며 현재 우리 경제가 ‘시나리오 5’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따라 완화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데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가계신용 증가율이 둔화되는 등 금융시장 역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2000년대 초반 독일 상황을 예로 들며 거시건전성 정책을 완화한 것이 경기 침체에 따른 충격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개인들이 자산을 성급히 처분하는 것을 피하고 은행의 부채축소(deleveraging·디레버리징)를 억제했다는 평가다.
다만 이런 ‘완화적인 거시건전성 정책’을 금리 인하로 직결시키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위원은 ‘한국은행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위원별 의견 개진’에서는 동결을 주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국내경제의 성장세가 미약하게나마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 시까지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되, 당분간 수출을 중심으로 실물경제 회복의 지속성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시행할 거시건전성 정책으로써 가계부채 상황, 신용열위부문의 자금사정 악화 등 금융시스템 교란요인 완화를 들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거시건전성 정책은 시스템적 리스크(systemic risk)를 어떻게 제어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라며 “통화정책도 큰 틀에서 거시건전성을 제고하는 방향에서 이뤄지는 만큼, 이런 분석틀이 통화정책의 시점을 찾는데 유용하지 않냐고 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이 금통위원은 주요국들의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 안정보다는 경제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며 “나라마다 자산시장의 성격, 물가에 대한 반응이 다른 상황에서 통화정책 운용의 국제적 협력을 어느 정도까지 고려해야 할지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