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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저긴 70년댄가? 80년댄가? 아니면 21세긴가?’ 또 다른 사진엔 성곽까지 걸쳐있다. 그러고보니 낙산에는 서울의 어제가 고스란히 찍혀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은 도시가 걸어온 역사의 나이테를 더듬어보기 힘든 나라다.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를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불도저가 과거를 뭉개버렸다. 그래서 중심에 궁궐과 성곽만 남아있고 195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실금이 대부분 지워져버린 것이다.
날이 많이 풀려 낙산 가는 길은 그리 버겁지 않았다. 그래도 길은 복잡했다. 대학로에서 낙산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골목길 하나만 잡고 올라가다 오른쪽, 왼쪽 꺾다보면 어느새 낙산공원에 닿는다. 마치 사다리게임을 하는 것 같다. 미로다.
낙산공원에 닿을 즈음, 벽화를 하나 둘 만나게 된다. 좁은 창문이 달린 담장. 거기에 꽃을 그려놓았다. 낙타 모양의 철골구조물을 벽에 붙여놓은 집도 있고, 작은 액자를 여러 개 걸어놓은 담장도 있다. 꽤 예쁘다. 아니, 묘한 분위기라고 하는 게 맞겠다. 집들은 허름해서 다 쓰러질 것 같은데 형형색색의 그림을 그려놓았으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조형물과 벽화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촬영 소재다. 인터넷블로거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가 널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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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낙산은 한양의 4대산 중 하나였다. 경복궁 뒤의 북악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목멱산(남산), 동쪽의 낙산. 풍수상 우청룡인 낙산은 계곡이 좋고 창경궁과 창덕궁 등이 가까워 선비들이 꽤 살았다고 한다. <지봉유설>을 쓴 실학자 이수광,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도 낙산 기슭에서 살았다. 30여년 전 이사왔다는 주민 이도훈씨(55)는 “낙산 꼭대기에서 보면 해가 홍시같이 떨어진다. 전망이 참 좋은 곳”이라고 했다. 실제로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1910년대 한일합방 이후 유민들이 낙산 기슭에 몰려 토막집을 지었고, 한국전쟁 후에는 수많은 난민들의 판잣집이 보태졌다. 70년대 개발붐이 불면서는 낙산 시민아파트가 30동 들어섰다. 이 시민아파트는 고건 서울시장 때 없어져 낙산공원이 됐다.
달동네 정도로만 알려졌던 낙산을 갑자기 네티즌들이 찾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문화부 주도로 만들었던 공공미술프로젝트 때문이다. 당시 70여명의 화가가 참가했다. 낡고 허름한 골목에 벽화를 그려넣고 공원주변에 조형물을 설치하면서부터다. 이후 평일이건, 주말이건 사진동호인들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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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있단다. 어쨌든 흉물스러운 공간을 탈바꿈시켰으니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주민들과 괴리된 미술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박삼철 서울도시갤러리추진단장은 “사진찍기는 좋은 공간이지만 촬영자가 지역주민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현지 주민이 타자화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시카고의 ‘행동하는 예술’처럼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공공미술이 벽화만 그려주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나저나, 어둠이 내린 뒤 낙산에서 본 야경은 황홀했다. 서울의 달동네가 가장 화려한 서울의 중심을 볼 수 있는 곳이라니…. 세상은 아이러니하다.
◇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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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공원 앞길을 따라 걷다보면 조형물이 있다. 개와 사람이 하늘을 향해 걷는 모습을 한 조형물이 사진촬영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좌우로 골목길이 보인다. 골목 계단에 새그림, 해바라기 그림 등이 보인다.
*낙산공원 앞 이 길을 계속 걷다보면 달팽이길로 이어진다. 달팽이길이란 달팽이처럼 한 바퀴 빙돌아가는 찻길이다. 마치 달팽이처럼 생겼다. 달팽이길에서 보면 고릴라 조형물이 옹벽에 앉아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봉재공장 노동자의 벽화도 보인다. 이 길은 동대문 운동장에서 동대문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난다. 차를 가지고 오면 이 길을 통해 낙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 낙산공원 앞에 유료주차장이 있다.
*달팽이길 못미처 계단길로 계속 오르거나, 낙산공원으로 오르면 성곽길이다. 성곽길을 따라 이대부속병원 방향쪽(창신동 방향)으로 내려가면 허름한 주택가가 이어진다. 반대방향은 성곽길이 담장에 막혀있다. 혜화역 방향으로 내려가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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