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은 분명 전진했지만… ‘중천’

  • 등록 2006-12-20 오후 1:56:43

    수정 2006-12-20 오후 1:56:43

[조선일보 제공] 분명, 전진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21일 개봉하는 무협 판타지 ‘중천’(中天)은 2006년 연말 충무로의 가장 큰 관심과 기대를 모은 화제작이었다. 100억이 넘는 초대형 제작비, 정우성·김태희로 주목받은 톱스타 캐스팅, 의상(에미 와다·‘란’ ‘영웅’) 음악(사기스 시로·‘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아우르는 메이저리그 스태프,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장르였던 ‘무사’(2001)의 성취와 한계에서 얻은 학습효과(제작 조민환·김성수)까지.

더구나 90년대 중반 이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취월장을 보여줬던 충무로에선, 마지막 남은 처녀림같은 장르가 아니었던가. ‘중천’은 죽은 연인을 쫓아 저 세상까지 따라간 신라시대 무사의 이야기.



귀신을 본다는 누명을 쓰고 화형당한 소화(김태희)를 잊지 못하던 퇴마(退魔) 무사 이곽(정우성)은, 이승과 저승의 균형이 깨지면서 죽은 영혼들이 49일 동안 머무는 중천에 발을 디딘다. 그런데 이승뿐만 아니라 중천도 아수라장이다. 생전에 모셨던 처용대장 반추(허준호)는 절대악으로 변해, 중천을 지키는 신분이 된 소화를 위협하며 반란을 꾀한다. 숙명의 대결은 필연적이다.

이 야심 가득한 무협판타지가 보여주는 볼거리는 현단계 한국영화 스펙터클의 최전선이다. 짧게 끊어 타격하는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보여주는 액션 장면은 박력과 무게감에 있어 최고 수준이고, 국내 12개 업체가 협력·제작했다는 컴퓨터 그래픽은 ‘괴물’의 성취마저 능가한다.

상상의 공간인 중천 구중궁궐(九重宮闕)의 외관과 거리, 칼에 맞으면 불꽃과 재로 변하는 원귀들, 또 ‘스파이더맨 2’에서 닥터 옥토퍼스의 쇠 문어발을 연상시키는 사슬창 액션 등 ‘중천’이 창조해낸 공간과 비주얼은 참으로 휘황하다.

그러나 시각적 측면에서 ‘중천’이 보여주는 놀라운 성취는, 몰입이 쉽지 않은 드라마와 연기 탓에 제 빛이 나지 못했다. 볼거리로 승부하는 할리우드 초대형 블록버스터에서도 자주 만나는 경험이지만, 시각효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종종 그 스스로 이야기와 연기를 잠식하는 속성을 지닌다. 아기자기한 디테일보다 굵은 서사로만 일관하는 ‘중천’의 이야기는 분명 놀라운 속도로 질주하지만, 관객 감정의 격랑을 일으키고, 그 속살을 어루만질 여유는 없어 보인다.

또 청춘 스타 김태희는 대단한 매력을 지닌 것이 사실이지만, 속마음을 알 수 없이 소금기만 흘리는 눈물로 대변되는 평면적 캐릭터로 아쉬움을 남긴다.

창작자의 입장에선 안타깝겠지만, 어쩌겠는가. 성취를 거듭해온 한국영화의 놀라운 스피드만큼이나 관객들의 눈높이도 빠르게 상승한 게 사실인 것을. 중천의 영어제목 ‘restless’는 “불안한”과 “끊임없는”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지닌다고 했다. 이 야심찬 무협 판타지는 2006년을 마감하는 충무로의 지속적인 전진과 한계를 또 한 번 보여주는 역동적 단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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