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90년대 중반 이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취월장을 보여줬던 충무로에선, 마지막 남은 처녀림같은 장르가 아니었던가. ‘중천’은 죽은 연인을 쫓아 저 세상까지 따라간 신라시대 무사의 이야기.
귀신을 본다는 누명을 쓰고 화형당한 소화(김태희)를 잊지 못하던 퇴마(退魔) 무사 이곽(정우성)은, 이승과 저승의 균형이 깨지면서 죽은 영혼들이 49일 동안 머무는 중천에 발을 디딘다. 그런데 이승뿐만 아니라 중천도 아수라장이다. 생전에 모셨던 처용대장 반추(허준호)는 절대악으로 변해, 중천을 지키는 신분이 된 소화를 위협하며 반란을 꾀한다. 숙명의 대결은 필연적이다.
상상의 공간인 중천 구중궁궐(九重宮闕)의 외관과 거리, 칼에 맞으면 불꽃과 재로 변하는 원귀들, 또 ‘스파이더맨 2’에서 닥터 옥토퍼스의 쇠 문어발을 연상시키는 사슬창 액션 등 ‘중천’이 창조해낸 공간과 비주얼은 참으로 휘황하다.
또 청춘 스타 김태희는 대단한 매력을 지닌 것이 사실이지만, 속마음을 알 수 없이 소금기만 흘리는 눈물로 대변되는 평면적 캐릭터로 아쉬움을 남긴다.
창작자의 입장에선 안타깝겠지만, 어쩌겠는가. 성취를 거듭해온 한국영화의 놀라운 스피드만큼이나 관객들의 눈높이도 빠르게 상승한 게 사실인 것을. 중천의 영어제목 ‘restless’는 “불안한”과 “끊임없는”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지닌다고 했다. 이 야심찬 무협 판타지는 2006년을 마감하는 충무로의 지속적인 전진과 한계를 또 한 번 보여주는 역동적 단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