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증산 논란..효과 불투명

친미 중동국 vs 비중동국 대립 고조
수급 외 유가상승 요인 많아 증산효과 미미
  • 등록 2004-05-11 오전 10:41:40

    수정 2004-05-11 오전 10:41:40

[edaily 하정민기자] 유가가 연일 고공비행을 지속하면서 유가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향후 행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OPEC의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음달 정례 회의에서 증산을 논의하자고 나섬에 따라 OPEC의 증산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OPEC 내부에서 증산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증산이 현실화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게다가 OPEC이 증산을 해도 유가 상승세를 잡기 어렵다는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어 증산 효과를 섣불리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OPEC, 증산 둘러싸고 "갑론을박" OPEC 내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증산을 찬성하는 중동 국가와 인도네시아 등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비중동국이 대립하고 있다. 셰이크 아흐메드 파드 알 사바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8일 "원유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OPEC이 지속적인 원유 증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10일에는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뒤를 이었다.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OPEC의 원유 공급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하루 150만배럴 정도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친미 중동국가가 내부적으로 증산을 준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미국의 증산압력을 외면하기 어렵고 국제사회의 비난도 거셀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줄곧 중동 산유국에 대해 원유 생산을 늘리라는 압력을 행사해 왔으며 최근 그 강도를 더욱 높여가고 있다. 심지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는 11월 대선 전에 유가를 낮추겠다고 약속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태다. 국제사회의 반발도 크다. 지난 주말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돌파하자 시장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감산을 전격 강행한 OPEC은 비난의 표적이 됐다. 3차 `오일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고유가로 인한 경기둔화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35달러 이상의 유가가 1년간 지속되면 세계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경고를 내놨다. 겨우 회복기미를 보이는 세계 경제가 고유가로 타격을 입으면 그 부메랑이 OPEC 회원국들에게도 돌아온다는 사실을 OPEC 역시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이 전해지자 푸르노모 유스기안토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이 발끈했다. 푸르노모 의장은 10일 "미국의 휘발유가격 급등은 환경규제, 투기세력 가담, 이라크사태를 비롯한 지정학적 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OPEC의 감산 조치가 유가 상승과 무관하다는 종전 입장을 강조한 것은 물론, 미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있는 중동 산유국들과 입장을 달리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유가가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OPEC 때문이 아니며 현 상황에서 OPEC이 할 일도 많지 않다"고 말해 증산에 부정적이라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비중동 산유국들은 증산보다 허울 뿐인 현 22~28달러 유가목표 제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OPEC의 한 관계자는 최근 "유가밴드를 32~34달러로 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으며 베네수엘라, 리비아, 나이지리아 역시 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산유국인 압둘라 빈 하마드 알 아티야 카타르 석유장관역시 "유가밴드 상향을 위한 모멘텀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증산 효과도 불투명 "수급이 문제가 아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OPEC이 증산을 단행한다면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일단 사우디 석유장관의 발언 이후 국제유가는 큰 폭 하락했다. 나이미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자 마자 런던시장의 브렌트 유는 순식간에 3.1% 하락했고 뉴욕시장으로 넘어와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10일 뉴욕상품거래소의 서부텍사스산 중질유 6월은 전일대비 2.6% 하락한 배럴당 38.93달러로 마감했다. 유가가 배럴당 39달러선을 밑돈 것은 일주일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냐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OPEC이 증산을 결정한다 해도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기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의 주원인이 `수급`이 아니라는 점 ▲증산 결정 후에도 실제 공급량은 급증하기 어렵다는 점 ▲중국, 미국 등 원유 소비국들의 수요를 잠재우기 어렵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OPEC이 누누이 강조한 것 처럼 최근 고유가의 원인은 `수급` 보다 지정학적 우려 고조, 투기 세력 등에 기인한 부분이 많다. 감산에도 불구하고 OPEC의 몇몇 회원국들은 여전히 쿼터보다 많은 원유를 생산하고 있어 증산을 하더라도 실제 시장에 공급되는 원유량이 크게 늘어나기도 어렵다. 도이체방크의 아담 지민스키 애널리스트는 "설사 사우디 장관의 발언처럼 원유생산을 150만배럴 늘린다해도 실제 공급량은 거의 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파이낸셜타임즈역시 이라크를 제외한 OPEC 국가가 지난달 쿼터보다 하루 200만배럴의 원유를 더 생산했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소비를 막을 길도 없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1분기 원유 소비량이 지난해보다 15% 늘었다고 10일 보도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국가의 소비량역시 5.2%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가 경기과열을 단속한다지만 연 8~9%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국가의 원유 수요가 단박에 급감하긴 어렵다. 미국 역시 다음달부터 여름 휴가철을 맞이하면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 수요가 급증할 것이 확실시된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OPEC이 이미 생산쿼터보다 많은 원유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의 주장대로 150만배럴을 더 공급할 경우, 향후 OPEC의 수급 조절능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시티그룹 입핑 후앙 애널리스트의 발언을 인용, "중국의 원유 소비 확대는 불가피하다"며 증산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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