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현직 은행원까지 연루된 사기 일당 24명을 검거했다. 전문·분업화된 대규모 대포통장 유통조직의 실체를 규명한 것과 유령법인을 이용해 코로나19 보조금을 편취한 범행을 최초로 적발한 점이 성과로 꼽힌다.
합수단은 13일 보이스피싱 사기에 가담한 대포통장 유통총책 등 24명을 검거하고, 이 중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출범한 합수단은 현재까지 보이스피싱 조직의 국·내외 총책 등 총 270명을 입건하고 85명을 구속했다.
|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유통된 대포통장.(사진=동부지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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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통장 유통총책 A(52), 모집 알선책 B(52) 등 유통조직은 2020년 1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유령법인 총 42개를 설립해 대포통장 190개를 국내·외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대여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 39명을 상대로 약 14억원 피해금을 가로채는 과정에서 사기를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금액까지 합치면 피해 추정액은 약 62억원에 달한다.
현직 은행원까지 대포통장을 개설하는 데 가담한 사실도 드러났다. 합수단은 대포통장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A는 특정 은행에서 반복적으로 대포통장의 계좌를 개설하는 정황을 포착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은행원 C(40)는 도박사이트 운영에 사용할 법인계좌라는 말을 들어 불법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법인의 실존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고 계좌 다수를 개설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대포통장 개설을 돕고, 그 대가로 A의 펀드(월납 400만원)·보험(월납 1000만원) 상품 가입을 유치했다. 또 대포통장으로 피해금을 입금한 사기 피해자들의 정보까지 전달한 사실도 확인됐다.
총책 A는 자신의 조직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브로커 D(61)를 통해 대포통장 명의자와 관련한 경찰사건의 무마를 청탁하기도 했다. D는 사건무마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도 확인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 범행 조직도.(이미지=동부지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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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가 소상공인 등에게 지급한 재난지원금 제도를 악용하기도 했다. A씨 등은 대포통장 개설을 목적으로 설립한 유령법인이 마치 소상공인 등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인 것처럼 가장했다. 2021년 6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유령법인 명의계좌로 38회에 걸쳐 코로나19 보조금 총 874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합수단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필수적인 수단인 대포통장 개설 방지를 위해 수사과정에서 확인된 대포통장 유통실태를 금융감독원 및 금융회사 등과 공유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법인계좌 설립 절차상의 검증 강화, 사기 피해 신고에 따른 계좌 지급정지 이력을 토대로 한 추가 계좌개설 모니터링 등 계좌개설 관련 내부통제 강화 방안 마련을 제안할 계획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앞으로도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동시에 피해 예방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등 보이스피싱 범죄로부터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