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휴렛 패커드의 대주주인 휴렛과 패커드 가(家)가 컴팩 인수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유는 컴팩 인수로 휴렛 패커드가 매력없는 PC 비즈니스에 너무 많이 노출되게 되고 엄청난 이익을 내는 사업 부문인 프린터 부문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
H-P 공동 창업자의 아들인 월터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는지난 주 H-P의 컴팩 인수에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월터 휴렛은 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맥킨지 파트너스를 고용했다고 밝혔다.
휴렛 패커드 지분 5%를 보유하고 있는 휴렛가가 반대하는 공식 이유는 컴팩을 인수하면 PC 비즈니스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이는 결국 이윤폭이 작은 비즈니스에 너무 많이 치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월터는 이번 거래로 휴렛 패커드의 핵심인 프린터 비즈니스의 가치가 3분의1 정도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PC와 프린터 사이에서 트레이드오프(trade off)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패커드도 월터의 생각에 동조, 인수 반대쪽으로 투표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 패커드 가문은 현재 1.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의 반대 이유는 휴렛 패커드를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올려 놓았던 ‘HP 방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동안 나는 휴렛 패커드의 기업 문화를 단기간에 바꿀 수 있다는 경영진의 믿음에 회의를 가져 왔다”면서 “변화가 필요하고 불가피하다고 할 지라도 모든 혁신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휴렛 패커드의 기업 문화를 바꾸려는 최고경영자(CEO)인 칼리 피오리나의 경영 방식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현재 지분 10%를 갖고 있는 데이비드 앤드 루실 재단의 이사회 멤버는 아니지만 그의 여동생 두 명이 재단 이사다. 따라서 패커드 가문이 반대하게 될 경우, 재단이 반대 입장을 따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결국 이번 컴팩 인수건으로 경영진과 주주들의 이해상충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문제가 다시 대두된 셈이다. 대주주가 경영진들이 주주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거래에 대리인 비용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양가의 반대로 컴팩 인수가 무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리만 브라더스의 애널리스트인 댄 나일스는 현재 거래가 성공할 가능성은 반반이라면서 만약 양가와 휴렛 패커드의 최고경영자인 칼리 피오리가가 조금씩 양보하게 된다면 그 가능성은 75%로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양보란 PC 비즈니스의 포기라고 말했다. 베어 스턴스의 애널리스트인 앤드류 네프는 최근 리포트에서 “휴렛 패커드는 프린터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PC 비즈니스를 버려라”고 말했다.
PC 비즈니스 집중으로 주주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컴팩의 이사회 멤버이자 벤처 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의 설립자인 토머스 퍼킨스는 “나는 양가가 컴팩이나 컴퓨터 산업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들은 컴팩 내면의 강점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창업자 가족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컴팩 인수의 이점을 알기만 하면 창업자 후손을 설득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월터 휴렛의 대변인인 조엘 프랑크는 “휴렛 재단이 외부 전문가로부터 이번 인수가 가치가 없다는 조언을 받았다”면서 “주주 이익이 증대되지 않는다면 확장에 따른 통합 리스크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퍼킨스는 이에 대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다”면서 “최소한 20억~30억 달러의 효과가 있는데 이것은 생산 라인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서 성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PC 산업의 전문가들은 휴렛 패커드와 컴팩의 통합 이익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두 회사가 통합하는 이유는 결국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뜻하는데, 두 회사가 델 컴퓨터의 비용 구조(cost structure)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차별성을 가질 수 없는 상품(commodity)이 되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델 컴퓨터처럼 재고, 배급 채널, 연구개발(R&D) 등에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두 회사의 통합으로 PC와 프린터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번들링(Bundling)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미 PC 업계가 노트북을 살 경우에 프린터를 공짜로 끼워주는 등(물론 가격에 이미 반영이 돼 있기는 하지만)의 번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강점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두 회사의 경쟁력(competitive advantage)이 다른 점도 통합 효과를 감소시키는 이유가 되며, 보수적인 휴렛 패커드의 기업 문화와 진취적인 컴팩의 기업문화가 쉽게 융화될 수 없다는 점도 리스크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판을 인식한 듯 피오리나는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이 PC에 집착하는 것 같은데 이번 거래의 핵심은 PC 거래가 아니라 기업 컴퓨팅과 전문 서비스”이라고 말했다.
결국 휴렛 패커드와 컴팩의 통합은 PC 비즈니스의 장래에 대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주주들이 승인할 경우, 피오리나의 말이 어떻든 간에 PC 비즈니스의 미래 가치에 대한 시장의 신뢰 부여를 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