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이 달러수급에 따라 출렁거렸고 환율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언뜻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은행간 거래가 사라지고 외환거래규모가 평소의 4분의 1로 줄어든 상황에선 무척 큰 의미를 지니는 흐름이다.
은행 딜러들이 투기적 거래를 자제하겠다고 결의한 뒤 행동에 옮긴게 지난 24일 오후. 마침내 28일 달러/원 환율이 지난주말대비 2.30원 낮은 1111.80원으로 떨어졌다. 지난 7월20일이후 처음보는 1111원이다.
외환시장 현물환 거래이 70~80%를 차지한다는 은행간 거래가 사라진 후 기업들의 실수요 거래만으로 환율은 비교적 크게 흔들렸다. 이달들어 하루 1원이내에서 지루하게 등락하던 환율이 이처럼 움직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28일 외환시장의 특징들
외환딜러들이 은행간 거래를 자제한 탓에 이날 현물환 거래량은 금융결제원과 한국자금중개를 합쳐 6억8180만달러에 그쳤다. 지난 25일 4억1320만달러에 비해 약간 늘어났지만 딜러들의 도원결의 이전인 지난 23일의 20억1580만달러에 비해선 크게 줄어든 규모다. 딜러들의 자율합의가 지켜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환율변동성 확대. 지난 25일보다 10전 낮은 1114원에 거래를 시작한 환율은 마감을 앞두고 1111.70원까지 떨어졌다. 종가는 1111.80원. 하루변동폭과 전일대비 하락폭이 모두 2.30원이다. 8월들어 하루변동폭이 가장 컸던 날은 지난 9일로 1.90원이었다. 8월중 환율이 줄곧 1114~1115원을 맴돌았기에 하락폭도 이날이 가장 컸다.
이날 대부분 거래가 1113원대 초반에서 이루어졌던 점도 주목할만하다. 1113원대 초반에서 달러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었다는 의미다. 정유사등 기업들의 결제수요가 있었고 일부 은행의 외화자산 관련 충당금 수요가 등장했다. 네고물량은 지속적으로 나왔고 외국인 주식매수대금의 경우 지난 24, 25일 매수분이 5000만달러 안팎 유입됐다. 적어도 오후4시쯤까지는 균형이었던 셈.
이는 달러를 들고있는 수출기업입장에선 환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당분간 없음을 의미했다. 갈수록 무거워지는 네고물량으로 환율이 1112원대로 밀리자 네고물량을 서둘러 파는 모습이 나타났고 이는 낙폭을 더 깊게했을 뿐이다.
◇환율이 이렇게 움직인 이유.. 각기 다른 해석
공기업 결제수요와 환위험헤지용 수요, 국책은행들의 정책적 달러매수등 환율하락을 막아온 요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하루였다. 1113원대초반에서 수요와 공급 양쪽이 다 얇았기에 환율은 쉽게 급락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한 딜러는 "지난 25일까지 일부 보였던 국책은행의 매수가 오늘 보이지않을 것이 네고물량 유입과 함께 환율하락요인의 결정적 요인"이라며 "은행의 투기적 거래가 없는 상황에서 국책은행들이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분석은 딜러들이 "은행간 거래 자제"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환율변동성을 막는 당국의 보이지않는 개입"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고개를 든다. 기업체 외환담당자들은 "은행간 거래가 없는 상태에서 환율이 변동성을 가진 것은 거꾸로 그동안 환율을 박스권에 묶어둔 주체가 바로 은행들임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했다. 딜러들 스스로 10전~20전 차익에 집착해 거래에 나섬으로써 환율을 좁은 범위에 가두어두었다는 것.
◇보다 분명해진 공급우위 시장흐름
시중은행 한 딜러는 "지난 24일 딜러들이 은행간 거래를 자제키로 한 것은 월말까지 시장의 달러수급이 실제 그렇게 철저하게 균형을 이루고있는지 알아보자는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28일 환율은 상당한 공급우위 시장흐름이 존재함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이달중 무역수지는 상당히 큰 규모의 흑자를 낼 전망이다. 어쩌면 올들어 월간단위론 가장 큰 폭의 흑자도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 경우 기업들의 네고물량은 예상외로 많을지 모른다.
추석이 다가오는 점도 달러공급 우위를 점치게하는 부분. 월말을 넘겨도 추석이 곧 뒤를 잇기 때문에 기업들은 보유달러를 팔아 원화를 마련해야할 처지다. 가뜩이나 자금사정이 위축되는 추석대목이기에 달러매도심리는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외부요인으로는 증시의 외국인 주식매수세와 엔화강세도 환율엔 하락요인이다. 외국인들은 지난 8일이후 14영업일째 순매수를 이어가고있고 달러/엔 환율은 106.2엔대로 급락했다. 달러약세가 이렇게 진행되면 달러/원 환율도 하락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물론 28일 환율이 급락했다고해서 이런 흐름이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여전히 당국은 최대의 외환시장 참가자이고 환율안정을 위해 동원할 수단이 많다. 딜러들도 아직 대기중인 기업들의 결제수요가 적지않은 것으로 보고있다. 무수한 달러공급우위 요인에도 불구, 섣불리 달러매도에 나서기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환율하락폭도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외환시장 방향
29일 오찬에서 딜러들은 지난 24일의 결의를 중간평가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환율이 웬만큼 흔들려도 오찬회동 이전에 은행들이 투기적 거래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사흘이나 지켜온 약속을 미리 깰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대부분 시장참가자들은 오찬회동이후 딜러들의 거래자제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게 사실. 이르면 29일 오후, 늦어도 30일오전부터는 외환시장이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있다.
환율은 자연스럽게 하락압력을 받을 전망. 28일 막판 급락에 불안을 느낀 기업들이 서둘러 달러매도에 나설 경우 환율하락이 예상되며 이 경우 달러수요는 추가하락을 기대, 뒤로 물러설 가능성이 있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개장초 일단 당국의 의지도 시험해볼 겸 1110원선을 시도해볼 가능성이 높다"며 "역시 당국의 의지가 어느 선에서 출현하느냐가 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