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사는 김종호(24)씨는 21일 지난해 발생한 살인사건을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는 그날 이후 양쪽 귀에 꼽고 다니던 이어폰을 한쪽만 사용한다. 큰 소리로 듣던 노래도 작게 듣는다. 그는 “여기 산다고 하면 친구들이 괜찮냐고 묻는다”며 “사람들이 계속 칼부림을 이야기하고 걱정하니까 늘 밤길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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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에서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 1년,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그 사건은 여전히 시민들을 불안 사회에 살게 하고 있다. 연이어 벌어지는 흉기난동, 여기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번지는 살인 예고글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가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사건의 충격을 잊지 못한 사람들은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얼굴과 거리에도 불안을 호소했다. 신림동 주민인 김모(73)씨는 “지하철 계단만 봐도 사건이 떠오르고 너무 안타까워서 근처로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마를 찌푸리던 김씨는 “얼마 안 돼서 둘레길에서 성폭행사건이 벌어졌는데 우리 손자가 산악자전거로 자주 다니던 길이라 더 놀랐다”며 “그 뒤로는 도림천으로 산책도 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사건 현장과 무관한 지역도 불안에 떠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둡고 으슥한 길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떤 범죄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생각 탓이다. 인천에 사는 백모(40)씨는 “작년 그런 사건이 있은 후 행동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사람을 마주치면 경계하게 된다”며 “내가 언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섬뜩할 때가 많다”고 했다.
무방비로 노출돼 더 힘든 범죄·사고…“트라우마 관리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사회가 범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건사고는 사회 불안과 집단 트라우마로 남기 쉽다”며 “직접 경험뿐 아니라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으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권역별로 마음치료를 돕는 트라우마센터가 있는데 접근성과 지원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흉기 난동뿐 아니라 얼마 전 시청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도 매우 일상적인 공간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발생해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며 “비극적인 일이어도 벌어진 이유를 이해하면 회복할 수 있는데 (이상동기 범죄는) 소화되기 어려워서 트라우마로 잘 남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심리적·물질적으로 사건 이후 안정감을 느껴야 회복할 수 있다”며 “심리적 안정감을 기를 수 있도록 사건·사고 직후 사회의 작동 방식과 수습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2차 가해를 허용하지 않는 규범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