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수입 명품화장품 코너에서 근무하는 박 모(27)씨. 3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조금 전 고른 5만원대 아이섀도를 환불하자 속에서 욱하는 게 치밀어올랐다. 이 여성은 사지도 않을 마스카라와 파운데이션 등을 30분 넘게 꼬치꼬치 캐묻고 메이크업까지 받고는 아이섀도 하나만 구매해갔다. 박 씨는 환불을 요구한 고객에게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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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의류매장에 근무하는 김 모(26)씨는 지난 21일 세일이 끝난 뒤 꿀 맛 같은 정기휴일을 맞았지만, 그간의 피로 탓에 오후가 넘어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김 씨는 “부모님은 번듯한 백화점에서 근무한다고 좋아하시지만, 누군가 백화점에서 일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푸념했다.
미스터리 쇼퍼의 존재도 직원들에게는 스트레스다.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근무하는 성 모(25)씨는 “진상고객 뺨치는 미스터리 쇼퍼에 회사 다닐 맛이 안날 때도 있다”며 “직원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영진의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상품판매원·전화상담원의 감정노동 실태’ 보고서를 보면 상품판매원의 10명 중 6명이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경험했고, 인격무시성 발언을 들은 비율도 42%에 달했다. 전화상담원은 32%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찬임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감정노동자는 ‘일하는 내내’ ‘어떠한 경우라도’ 조직이 필요로 하는 감정과 태도를 표현해야 하고, 그 표현 여부를 늘 감시당하고 있다”며 “그 강도는 일이 주는 일반적인 긴장과 스트레스보다 훨씬 세다”고 분석했다.
회사측은 “근로기한이 정해진 계약직 근로자는 현행법상 주 40시간 미만 근로계약만 체결할 수 있어 10분 단위로 맺었을 뿐”이라고 “법 테두리 안에서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사 노조는 “하루 7.5시간의 근로계약을 가정하고 30분씩 더 일한다고 할 때 회사는 연간 110억원 이상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사측이 편법적인 근로계약으로 직원들의 임금을 편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엔 카카오톡이 유통업계 종사자들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하소연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모 대형마트 직원은 “쉬는 날에도 ‘카톡카톡’ 울려대는 판에 짜증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그룹방을 나가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답답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