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안근모기자] 3월 산업활동과 4월 물가 실적 발표를 계기로 한국은행,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은 집행부의 인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
물가상승 위험이 낮아진 반면, 경기하강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는 것. 그동안 팽팽한 균형을 깨고 경기쪽으로 우려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안팎에서 일고 있는 강한 금리인하 압력을 뿌리치기에 힘이 달려 보인다. 다가오는 금통위에서 적어도 우호적인 `힌트`는 줄 듯한 게 `30일 오전` 한국은행의 분위기다.
◇"경기하강 위험 더 커지고, 물가상승 위험 줄어"
한국은행 관계자는 30일 "유가안정에 힘입어 물가상승 위험은 좀 줄어든 반면, 성장의 다운사이드 리스크는 좀 커졌다"고 말했다. 이틀간 발표된 산업활동과 물가동향 지표 및 최근의 사스사태 등을 종합 감안한 현실평가이다.
다른 관계자 역시 똑같은 평가를 했다. 한은 집행부 내부에서 이미 컨센서스가 형성된 듯하다. 한은 집행부가 성장과 물가 위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음을 이처럼 `명시적`으로 표명하기는 처음이다.
물론 지난 2월부터 한은은 경기하강 위험에 좀 더 무게를 둬 왔지만, 표현은 `암시적`이어서 한 차례의 해석을 더 필요로 했었다.
[통화정책방향 발표문에서 `경기`와 `물가`에 대한 평가]
"소비둔화에도 불구하고 산업생산과 수출이 활발한 점 등에 비추어 견조한 상승세를 지속"(1월) → "수출호조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소비 및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그 속도는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2월) → "수출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소비 및 설비투자 수요의 위축으로 상승세가 계속 둔화"(3월) → "소비 및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재고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상승세가 계속 둔화"(4월)
"12월중 물가는 농산물가격의 큰 폭 상승, 공공 및 개인 서비스요금 상승 등으로 오름세가 확대되었으나, 연평균 상승률은 목표 범위내에 머물렀으며 부동산가격도 전월에 이어 안정세"(1월) → "1월중 근원인플레이션율은 3% 수준에서 안정되었으나 소비자물가는 석유류가격 인상 및 설 수요 등에 따른 농산물가격 상승에 따라 높은 오름세"(2월) → "근원인플레이션율이 3% 수준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 급등의 영향 등으로 높은 오름세를 지속"(3월) → "공공 및 개인서비스 요금, 농산물가격, 석유류 가격 상승에 주도돼 오름세가 확대"(4월)
한은 관계자는 "문제는 북핵과 사스로 인한 충격이 수정전망때보다 두 요인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물가의 경우 수요면에서 압력이 있을 때 인플레 압력이 커지겠지만, 현재로서는 수요면 압력은 큰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경기위험이 더 커진 상황에서 시장에서 강하게 일고 있는 금리인하 기대감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남대문시장 행차를 통해 더욱 강하게 드러난 일부 금통위원들의 성향도 마찬가지.
◇"조금만 더 지켜 보자"
하지만, 당장 액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까지는 이르지 않은 듯하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위험이 더 커졌다는 것은 현재까지가 그렇다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어떨 것인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과 사스 등이 소비·투자심리, 수출 등 경제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칠 지가 관건인데, 그 것을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스와 북핵, 미국경제 등에 관한 뉴스가 들쭉날쭉하게 나오면서 시장이 일희일비하는 상황에서 향후를 예단해 대응에 나서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홍콩 등지에서 사스가 진정국면에 접어 들었다는 소식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 첫 사스환자가 발생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또 미국 소비자 심리지표가 12년만에 최대의 상승폭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있었던 반면, ISM지수로 들여다 볼 제조업 경기는 여전히 위축돼 있을 것이며, 실업률도 8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금리인하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는데 대해서는 시장이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기대감이 강하게 이는데 대해 불만스럽다. 그는 "금리를 내릴 경우 신용위험이 해소되기 보다는 예금금리만 하락, 오히려 소비를 더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물가 그 자체는 당초 우려보다 개선될 것으로 보이나, 문제는 그 밖에 있다"면서 "인플레 기대심리와 대규모 부동자금 등이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통화정책 방향 결정까지 남은 날은 약 2주. 그 사이 4월 수출입 동향(산자부), 기업실사지수(전경련), 기업실사지수(한은), 소비자전망조사(통계청) 등 이라크 전쟁 이후를 반영한 실물,심리지표를 통해 보다 진전된 한은의 시각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