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교과서 전쟁', 그리고 역사의 퇴보

  • 등록 2014-03-02 오후 5:18:31

    수정 2014-03-02 오후 5:18:58

[이데일리 조철현 사회부동산부장] ‘역사 교과서 전쟁 2013’, 그리고 ‘교과서 검정 전쟁 2014’.

지난해 교육계를 뜨겁게 달궜던 역사교과서 논란이 2라운드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1라운드였다면, 2라운드는 교과서의 국정(國定) 전환 논쟁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불거진 파동이 엉뚱하게도 ‘국정교과서 부활’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1라운드는 교육 현장에서 교학사 교과서가 퇴출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일선 학교의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채택률이 사실상 ‘제로(0)’를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숨 돌릴 겨를도 없이 2라운드가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전선도 교과서 발행 체제 전환을 둘러싼 갈등으로 확대되는 형국이다. 전쟁의 불을 댕긴 쪽은 교육부다. 교육부는 얼마 전 한국사 교과서를 포함한 모든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교과서 발행과 관련, 현재의 검인정제를 국정제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정제는 국가가 집필한 교과서만 일선 학교에 배포하는 제도다. 반면 검정제는 국가가 정한 집필 기준을 통과한 여러 출판사의 교과서를 학교가 고르도록 하는 것이다.

새 역사 교과서가 나올 때마다 학계와 정치권 등이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나뉘어 ‘역사 전쟁’을 벌이니 아예 ‘단일 국정 교과서’로 가자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더 이상 소모적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하지 말자는 취지도 담겨 있다.

그럼에도 일선 학교의 교과서 선택권을 근본적으로 뺏는 국정제도로 가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희한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마다 이념을 달리하는 세력의 반발이 거세질 게 뻔하다.

국정 교과서의 폐단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이 끝난 사안이다. 1974년 기존의 검정체제를 뒤엎고 도입된 국정 교과서 체제는 ‘특정 권력을 옹호하고 획일적인 시각을 강요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30년가량 유지되다가 2000년대 들어 검정 체제로 바뀌었다. 권력의 자의적 개입을 막고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의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한 조치였다.

교과서 발행 주체가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국가가 발행하는 교과서로 자기 나라 역사를 가르치는 곳은 북한·베트남·캄보디아 정도다. 대부분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다양성과 자율성은 교육의 기본이다. 사실 교과서가 하나면 정답도 하나가 된다. 국가가 정해준 하나의 이론과 내용만을 가르쳐서는 개성 있고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없다. ‘창조경제’는 박근혜정부 국정 운영의 주요 축이다. 하나의 교과서에 한 가지 시각을 담는 국정 편찬시스템으로는 창조의 씨앗을 뿌리기 힘들다. 창의성은 서로 다른 각도와 의견이 충돌하며 도출되는 법이다.

지난해 불거진 역사 교과서 문제는 검정제도 자체보다는 제도의 부실한 운영 때문에 촉발됐다. 수준 미달의 부실한 교과서 내용은 검정에서 거르고 규정을 위반한 교과서는 검정을 취소했으면 역사 교과서 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교육부는 교과서의 국정 전환 여부를 늦어도 오는 6월 말까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국정화의 무리수를 감행하려 한다면 교과서 전쟁 2014’ 버전이 준동해 온통 사회를 들썩이게 할 게 분명하다. 교육부는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하지 말고 검정 시스템 강화 방안부터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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