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하정민기자]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세계 경제회복의 최대 복병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저점을 높여 온 유가는 전일 뉴욕시장에서 배럴당 41달러를 돌파하며 21년래 최고치로 급등했다.
국제유가의 기준점이 40달러로 대폭 상향이동하면서 고유가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현재로선 고유가가 `물가상승→소비위축 및 기업비용 증가→경기회복 둔화`란 악순환을 초래해 겨우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세계 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란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고유가 악영향 전망이 과도하다는 반박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세계 경제, 특히 미국이 고유가로 인한 경제타격을 감내할 만큼의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3차 오일쇼크를 운운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OECD 등 "고유가에 과민반응 말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3일 고유가의 파급력에 대한 최근 분석들은 과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OECD의 장 필립 코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OECD 회원국의 경우 국제 유가가 5달러 상승해도 인플레이션 증가율 및 국내총생산(GDP) 감소율이 0.2%포인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가 동향과 관련된 최근의 논평들은 과민반응으로 분류할 수 있다"며 "공중 신뢰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역인 그레고리 맨큐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역시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그는 "고유가가 경제에 중대한 위험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며 "미국 경제는 이미 이를 물리칠만한 `강건한(robust)` 회복 기조에 진입했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 캐롤라인 바움도 가세했다. 바움은 13일 `유가 충격이 사라지고 있다(Taking Some Shock Out of Oil Prices)`는 제목의 칼럼에서 고유가 쇼크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비관론자들의 우려처럼 경기둔화와 고용악화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움은 유가 50달러 시대를 전망한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가격이 높으면 공급량도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OPEC와 OPEC 비회원국 모두 공급량을 늘려 유가의 추가상승을 막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효율이 향상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바움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1달러를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원유량은 1970년대 초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강조했다. 1981년 미국 정유업체들의 원유수입 비용은 배럴당 평균 35.24달러였지만 달러화 변동을 감안할 때 유가가 72.61달러는 돼야 당시 유가와 같다는 분석도 있다.
많은 이코노미스트들 역시 아직은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골드만삭스의 잔 해치어스 이코노미스트는 "유가상승은 완만한 경제적 역풍이며 일정 부분 경제성장을 잠식할 지언정 오일 쇼크와는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하이프리컨시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언 세퍼드슨도 동참했다. 그는 "하루 200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는 미국이 유가 40달러 시대를 맞아 GDP의 0.6%에 달하는 650억달러의 비용지출을 겪게 됐다"면서도 "미국은 석유소비량의 30% 정도를 자체 생산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다른 국가에 비해 경제성장 타격이 훨씬 적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미국이 원유 소비를 위해 사용한 달러는 결국 미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형태로 돌아온다"며 "고유가로 미국 석유업계역시 연 200억달러의 추가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금리인상 우려로 달러 약세가 주춤해지고 있는 것도 유가 추가상승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유가급등을 야기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투기세력인데 달러가치가 강세로 전환할 경우 원유시장에 유입된 투기자금의 상당분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운수업 발달, 지정학적 위험이 유가상승 부추겨" 반론
반대론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현실을 모르는 근거없는 낙관론"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최근 유가급등이 단순한 수급문제로 비롯된 것이 아닐진대 공급량 확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박이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실질금리를 낮출 경우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상쇄할 수 있지만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가 가시화한 상황에서 현 수준의 고유가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달 초 35달러 이상의 유가가 1년간 지속되면 세계 전체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유가로 인플레이션, 기업비용 확대 및 투자위축, 각국 정부의 세수감소 및 재정적자 증가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 별로는 미국 0.3%포인트, 일본 0.4%포인트, 유럽지역 0.5%포인트씩 성장률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신흥공업국들이 많이 몰려있는 아시아는 고유가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 전망했다. 아시아 공업국들은 석유수입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데다 석유소비는 많아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평균 GDP가 0.8%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의 카트린 벤홀드 칼럼니스트역시 `오일쇼크란 악마가 돌아왔다(Return of economic demom:oil shock)`란 제목의 칼럼에서 고유가는 필연적으로 세계경제의 불황과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에너지가격은 경기변동을 예측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며 "지난 30년간 네 차례의 주요 불황기는 모두 유가급등 이후에 찾아왔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미국 경제가 누린 `신경제 호황`은 저유가의 혜택을 본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세계화에 따른 운수산업 발달이 고유가에 대한 취약성을 길렀다고 지적했다. 운수산업 대한 세계 경제의 의존도가 높아져 고유가 타격도 비례해서 커졌다는 것. 벤홀드는 "시속 30km 이상으로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며 "향후 30년간 선진국 석유 수요증가의 주 요인은 운수산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이체방크의 마이클 루이스 애널리스트역시 "수요 증대 외에도 지정학적인 위험, 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공급 감소 등에 따라 유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라크 전쟁 종전 후 이라크 원유생산 확대를 유가안정의 핵심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정국 악화에 의한 원유설비 테러로 일평균 200만배럴 정도의 원유를 수출하던 이라크의 판로가 막히면서 수급 불안은 본격 시작됐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정 테러는 40달러 돌파의 결정적 빌미를 줬다.
러시아를 비롯한 OPEC 비회원국들이 점유율 확대를 위해 산유량을 늘릴 가능성도 현재로선 크지 않다. 전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세계 원유수요량이 16년래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며 비 OPEC 국가의 석유생산이 예상만큼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고유가의 최대 문제점은 물가상승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 회복을 뒷받침했던 저금리 기조가 흔들리고 기업들이 비용증가를 이유로 감원 등을 실시한다면 세계경제에 몰아칠 한파의 강도가 예상보다 훨씬 세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