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제약회사, 이익과 탐욕사이

  • 등록 2002-06-10 오후 12:28:16

    수정 2002-06-10 오후 12:28:16

[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몇년전 개봉된 영화중에 "도망자"라는 영화가 있었다.수십년전 한국에서도 소개돼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미국 TV 드라마를 헐리우드식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다.해리슨 포드가 주인공인 리처드 킴블박사로 출연해 꽤 관객을 끌어 모았었다.

"도망자"의 감독 앤드루 데이비스는 영화의 줄거리를 60년대 미국 ABC방송국 드라마에서 그대로 가져왔지만 새로 리메이크된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중엔 제약회사의 음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의사로 분한 리차드 킴블이 "아내 살해 혐의"를 받고 도망자가 되는 이유는 거대 제약회사의 이익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뜬금 없는 영화 이야기였지만 제약회사는 영화에서 종종 음모자로 나온다.특히 거대 제약회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선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집단으로 묘사되곤 한다.

최근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 브리스톨 마이어가 미국내 29개 주 검찰로부터 소송을 당한 사건은 "현실이 소설보다 재미있다"는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준다.브리스톨 마이어는 항암제 "택솔"로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회사다.

브리스톨 마이어를 기소한 주 검찰의 주장은 브리스톨이 부당하게 "택솔"의 특허를 연장해 다른 경쟁회사들이 이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만약 브리스톨이 "비열하게" 특허를 연장하지 않았다면,그래서 다른 제약회사들이 택솔과 유사한 약을 판매할 수 있었다면 택솔의 가격은 현시세의 30%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검찰측 주장이다.택솔은 수개월 복용하는 데 약 1만달러가 들 정도로 고가의 약이다.

오하이오 주 검찰의 베티 몽고메리 검찰총장은 "암 환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브리스톨의 이같은 행위는 참을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택솔의 약값이 인하됐다면 (돈 때문에) 택솔을 포기했던 많은 환자들에게 복음이 됐을 것"이라고 브리스톨 마이어를 비난하고 있다.

뉴욕 주 검찰의 엘리엇 스파이저 총장(메릴린치 사건으로 스타가 된 바로 그 인물이다)도 "환자들과 의료보험회사들이 택솔때문에 부당하게 지출한 돈을 브리스톨이 모두 뱉어내도록 하는 것이 이번 소송의 목표"라며 "브리스톨은 그간 수십억달러의 이득을 부당하게 챙겼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공소장에 기초해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브리스톨 마이어라는 주연이 있고 "어메리칸 바이오사이언스"라는 캘리포니아의 조그만 제약회사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택솔의 원료인 "파클리 택셀"은 당초 국립 암연구소가 개발해낸 약이다.브리스톨 마이어는 이를 상품화해 "택솔"이란 이름으로 FDA(미국 식품의약국)의 인가를 획득함으로써 92년부터 97년까지 5년간 독점적 판매권을 땄다.97년 독점 판매기간이 종료되자 브리스톨 마이어는 택솔의 전달기제(약이 인체에 흡수되는 방법)와 관련된 두가지 중요한 특허를 새로 제출해 "택솔"의 독점 판매기간을 늘리려고 시도했다.택솔 자체로선 이미 특허가 소멸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브리스톨은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바로 어메리칸 바이오사이언스와 "짜고" 자사에 거짓소송을 제기하도록 한 것이다.어메리칸 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00년 12월 브리스톨에 "택솔의 특허와 관련된 모든 서류를 제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는 데 이같은 소송이 제기되면 향후 30개월 동안 택솔과 유사한 제품의 판매는 자동적으로 금지된다.브리스톨 마이어는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브리스톨 마이어는 물론 이같은 혐의를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브리스톨 마이어의 대변인은 "주 검찰이 나섰다는 것 외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소송"이라며 이번 소송이 그간 소비자단체나 여타 다른 제약회사들이 숱하게 제기한 주장의 "재탕"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어메리칸 바이오사이언스도 "브리스톨 마이어와 공모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그런 상상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어메리칸 바이오사이언스가 브리스톨 마이어에 대한 협조의 댓가로 병원협회 소유기업(브리스톨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에서 신규자금을 펀딩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형 제약회사와 신생 바이오기업,제약회사의 영향력 내에 있는 몇몇 기업까지 얽히고 섥혀 한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특허와 독점 판매권,가짜 소송,펀딩 등 사용된 소품들만 봐도 헐리우드 영화 뺨치게 극적이다.여기에다가 검찰과 소비자단체까지 출연하고 있다.

미국여성보건연맹(NWHN)의 신시아 피어슨은 이렇게 평가한다."검찰이 이번 소송에서 이긴다면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기업들에게 따금한 충고가 될 것이다.많은 회사들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특허를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 웃기는 얘기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어떻게 날까? 영화 도망자에서 킴블 박사는 제약회사의 음모를 밝혀내고 자신의 누명을 벗는다.그러나 현실에선 항상 "사필귀정"으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브리스톨 마이어도 "잘못은 없지만 공익을 위해 벌금을 내겠다"고 수억달러의 벌금으로 이번 소송을 마무리지을까.마치 메릴린치가 투자자 오도행위에 대해서 뉴욕검찰과 합의했던 그런 방식대로.정말 현실은 소설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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