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한우]공급과잉·사료값·수입산에 우는 17만 농가

적정 사육두수보다 40만마리나 많아
곡물·건초가격 폭등 사료값 크게 뛰어 부담
쇠고기 수입 3년간 급증 미국산 232%나 늘어
  • 등록 2012-01-10 오후 12:10:00

    수정 2012-01-10 오후 1:17:34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10일자 16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소값 폭락으로 17만 축산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구제역으로 자식같은 소를 땅에 묻은 기억이 아직도 또렷한데 이번엔 사료값을 감당할 수 없어 애지중지하던 소를 굶어죽게하는 비극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급과잉, 사료값 폭등, 수입쇠고기의 안방공략이라는 세가지 악재가 축산농가의 숨통을 조여왔지만, 정부는 일이 터진 뒤에야 뒤늦게 대책을 내놓는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소값 폭락의 주요 원인과 대책을 살펴봤다.  
◇ 예고된 공급과잉

국내 한우와 육우의 적정 사육두수는 260만마리 정도다. 하지만 지난해 6월 한우와 육우 사육두수는 이미 300만마리를 넘었다. 연말로 접어들면서 줄긴 했지만 여전히 30만~40만마리는 초과공급 상태에 놓여있다.

소사육이 늘게된 이유는 한마디로 돈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파동으로 한우마저 소비가 줄자 정부는 쇠고기 이력제, 원산지 표시 강화, 한우 홍보 등 여러가지 소비 진작책을 내놨다. 덕분에 한우값은 지난 2009년 600만원(큰수소,600kg기준)을 넘었다. 농민들 사이에선 농사짓다 망하지 않으려면 한우를 키워야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문제는 이듬해 말 터진 구제역이다. 약 4개월간 16만마리가 살처분됐음에도 구제역으로 한우 소비가 더 크게 줄면서 소값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것. 구제역이 끝난 뒤에는 이동제한에 묶여있던 소들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리면서 소값이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말 소값 급락에는 축산농가가 한우 암소마저 내다판 영향이 크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소등급판정 결과를 보면 지난 12월 도축뒤 등급판정이 내려진 한우 암소는 3만3070마리로 전년동기대비 45% 급증했다. 암소를 팔았다는 건 기업이 생산설비를 내다판 것과 비슷하다. 축산농가가 미래를 그만큼 어둡게 보고있다는 얘기다.  
◇ 사료값 10% 뛰면 축산농가 순수익 3분의 1 급감

소값 급락의 또다른 원인은 사료값이다. 사료값 폭등에 부담을 느낀 축산농가가 견디다못해 소를 파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배합사료 가격은 국제 곡물가격이 뛰면서 30% 올랐고, 볏짚과 같은 건초가격은 더 큰 폭 뛰었다. 여기에 사료회사에 지급하는 정부의 원료구매 지원금도 줄어 축산농가들은 사료값 폭등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강원도 원주에서 한우를 키우는 김명재 씨는 "예전에 1000만원 했던 소가 지금은 많이 받아야 400만~500만원 정도"라며 "무엇보다 한달에 700만~800만원 들어가는 사료값이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농축산물생산비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2010년 소 한마리당 사육비(한우 비육우 기준)는 평균 607만원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지출항목은 사료비(228만원)로 사육비의 약 40%를 차지한다.

당시 축산농가의 순수익이 소 한마리당 74만원이었음을 고려하면, 사료값이 10%(22만원)만 올라도 농가의 순수익은 3분이 1이나 줄어들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30%나 오른 사료값에 축산농가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괜한 엄살이 아닌 셈이다.

 ◇ 수입쇠고기 안방점령

쇠고기수입이 늘어난 것도 소값이 떨어지는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국내에 수입된 쇠고기(냉동+냉장)는 21만톤이었으나 지난해는 28만톤으로 3년새 30% 이상 늘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바람이 거셌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은 10만6000톤으로 3년새 232% 급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고기집을 운영하는 한 식당주인은 "한우는 너무 비싸 손님들의 요구에 맞추려면 가격이 싼 수입산을 쓸 수밖에 없다"며 "그중 미국산은 마블링도 있고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아 다른 식당주인들도 많이 찾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입 쇠고기의 안방점령을 바라보는 축산농가의 심정은 쓰리다. 경북 안동시에서 다른 마을 이장들과 식육점을 공동운영하는 이준탁 이장은 "소값이야 떨어질 때도 있고 오를때도 있지만, 소비자들 입맛이 수입산에 익숙해지는게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미FTA 발효로 쇠고기 관세(현행 40%)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면 국내 축산농가가 들어설 땅은 더욱 좁아지게 된다. 최근 소값이 송아지를 위주로 떨어지는 것도 몇년 뒤 소값 전망이 그만큼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소값 더 떨어질라" 정부는 부랴부랴 소값안정 대책을 내놨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4일 군납 쇠고기를 수입산에서 국내산으로 대체하고 젊은 암소 위주로 도태장려금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수요는 늘리고 공급은 줄여 소값하락을 막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응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민간 농업연구소인 GS&J 이정환 이사장은 "지금의 소 사육두수는 이미 3~4년전 송아지 출산두수에 결정된 것이라 암소를 잡아도 당장의 공급과잉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오히려 도축물량 증가로 소값이 더 떨어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농민들이 가격하락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설득하는 일이 우선"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한우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게끔 유통마진을 낮추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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