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PCA에서 더 이상 DB형을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
퇴직연금 시장에서 수위권을 차지하는 PCA 생명조차 직원들에게 DB형을 제공하지 않을 정도로 영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DB형을 꺼리는 추세다. 그도 그럴것이 기업들이 자산운용 실패에 따른 퇴직연금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영국 정부는 연금 갭 해소와 함께 퇴직연금 적자 문제 해결이라는 또하나의 숙제를 안고 있다. 퇴직연금이 기업에 지나친 부담을 줄 경우 우리나라 역시 근로자의 위험이나 보험금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 기업과 근로자들의 연금적자 해소 노력을 교훈삼을 필요가 있다.
◇ 관리연금제 도입..“비정규직도 보호”
지난 98년 연금개혁안에서 가장 큰 특징은 신탁법(Trust Law)에 근거를 둔 관리연금제(Stakeholder Pension) 도입이다. 관리연금제는 연소득 1800만원~4100만원(9500~2만1600파운드) 수준이며 규칙적인 연금 납부가 곤란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퇴직연금을 제공하지 않는 기업은 의무적으로 관리연금 제공사를 지정하고 근로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 자율에 맡겼던 퇴직연금 제공이 반강제화된 것.
관리비용은 가입자 개인별 적립기금을 기준으로 가입후 10년내 1.5%(2005년 4월 가입자부터 적용), 이후 1% 이내로 제한되며 최소 부담금은 20파운드다. 또한 가입자 개인 사유로 보험료 납부가 중단되거나 다른 연금 상품으로 이동할 경우 별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
관리연금보험 제공사는 가입자게에 연금자산의 가치와 보험료 총액, 수수료 등에 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퇴직연금과 마찬가지로 고용주가 의무적으로 분담금을 낼 필요는 없으나, 기업 분담금이 있는 형태가 70%를 차지할 정도로 채용과 직원 사기 등을 고려해 일정부분 부담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이밖에 영국에는 한 기업내 근로자들의 개인연금을 모아 유리한 조건에서 보험사와 협상할 수 있는 단체개인연금(Group Personal Pension)도 존재한다. 신탁업법에 따른 제도를 만들 필요가 없고 운영경비도 들지 않아 중소기업을 배려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근로자가 퇴직연금에 추가 납입을 원할 경우 추가적 임의기여(AVC)형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근로자와 회사의 납입 총액은 연금 수혜액이 최종급여의 3분의 2이내여야 한다.
관리연금제는 원칙적으로 DC형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와 함께 DC 형을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포석이 깔려있다.
영국의 기업연금은 DB형인 급여비례제도(Salary-Related Schemes)와 DC형인 Money Purchase Schemes으로 나눌 수 있으나, 오랫동안 DB형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해 왔다. 지난 2000년 기준 DB형 가입 근로자가 910만명으로 DC형의 90만명보다 10배 이상 많았을 정도다. DB형에서 연금지급 기준 급여로 최종 급여방식(Final Salary Schemes)을 채택할 경우 근로자는 자신의 최종 연도 총급여의 60분의 1에 가입연도를 곱한 금액을 연금으로 받게돼 30년 가입후 퇴직할 경우 직장 다닐때 연봉의 절반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주가 폭락에 따른 연금손실로 기업 부담이 가중되며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2000년이후 주가 폭락으로 연금자산이 크게 감소하자 기업들이 더이상 DB형을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 영국 기업연금들은 과거 자산의 절반 이상을 자국내 주식에 투자했으나, 최근 주가는 99년말대비 20% 이상 하락해 있다.
보험계리 상담회사인 레인크락앤피코크(Lane Clark & Peacok)에 따르면 100대 상장회사의 연금기금 적자규모는 420억파운드에 달하고 있으며 머니마케팅(Money Marketing)지 조사에 따르면 100대 상장사 가운데 96개사 연금이 적자 상태에 빠져있다.
기업의 DB형 회피 탓에 런던증권거래소 350대 상장기업 가운데 신입직원에 대해 DC형을 제공하는 기업은 2001년말 64%에서 2003년말 33%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 영국 사적연금 형태별 분류 | |
◇남은 숙제, 기업연금 부실화
영국 정부도 DC형 전환 유도와 함께 퇴직연금 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최저소득을 105파운드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연간 90억파운드로 추산되는 추가 소요 예산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세율을 3%포인트 인상해야 돼 결정을 보류해 놓고 있다.
하지만 연금 수령자들의 정치적 관심도가 높아 어떤 식으로든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2001년 선거에서 투표연령 인구 가운데 연금소득자 비율은 24%였으나, 실제 투표자중 비율은 35%에 달했고 노동당에 3기연속 집권이라는 승리를 안겨준 올해 총선에서는 40%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립기구인 연금위원회(Pensions Committee)는 이달말 퇴직연금 적자에 대한 대안책을 마련해 정부에 제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대대적인 연금 개혁을 단행할 계획이다.
◇ 롤스로이스의 교훈
우리나라도 퇴직연금 도입을 눈앞에 두고 있어 기업연금 부실화 가능성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의 퇴직연금 활성화 노력으로 규모는 성장하더라도 자산운용 등 내실은 제대로 갖추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인 롤스로이스 노사의 기업연금 적자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 노력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롤스로이스는 2003년 11월 퇴직연금 적자가 1억파운드에 달하자 노사 합의를 통해 노사는 장기간 협의를 통해 근로자들의 연금 수혜액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대신 회사는 DB형을 유지하고 분담금을 연간 6000만 파운드에서 9500만파운드로 늘이는 양보안을 택했다. 이같은 조치로 롤스로이스는 내년에는 퇴직연금 적자가 완전히 없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던컨 캠벨-스미스(Duncan Campbell-Smith) 롤스로이스 이사는 "퇴직연금은 30~40년간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한 일종의 복지 혜택인 만큼 DB형이 부담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DC형으로 전환해서는 않된다"며 "노사 합의를 통해 타협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DC형에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영국 퇴직연금 전문가들은 기업에게만 위험 부담을 떠넘길 경우 전체 근로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앤드류 영 연금감독국 관리관(사진)은 "기업이 적은 기부를 해도 되는 DC형으로 대체되며 신입 직원에게 DB형 선택의 길은 닫혀가고 있다"며 "위험은 누가 부담을 지느냐의 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것인 만큼 DB 구조의 위험성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GM사 문제에서 보듯 DB형에서는 고용주가 위험을 감수해야 돼 연금 체계가 회사를 부도로 몰고 갈 수도 있다"며 "저금리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업이 근로자에게 약속한 만큼의 일정 수익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DB형의 경우 기업이 연금 부담금을 사내에 40%까지 적립할 수 있어 연금적자에 따른 기업 부도가 발생할 경우 그만큼 근로자의 퇴직연금도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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