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반도체 설계의 중립국’이라고 불리는 영국 반도체 팹리스(설계업체) ARM이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자사 칩 설계의 역량을 과시해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 기업 상장(IPO) 가치를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는 평가지만, 자칫 반도체 칩 직접 생산에 나설 경우 그간 고객사였던 퀄컴, 삼성전자와 직접 경쟁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 ARM이 6개월 전 ‘솔루션 엔지니어링’ 팀을 만든 후 모바일기기, 노트북 등에 탑재될 반도체 시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팀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최강자인 퀄컴에서 스냅드래곤 칩 개발을 총괄했던 케보크 케치찬이 이끌고 있다. 소식통들은 이전 제품보다 기술적으로 더 진보한 칩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ARM은 시제품일 뿐 이 제품을 판매하거나 라이선스(특허료) 사업을 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ARM의 설계기술을 이용해 칩을 생산하는 퀄컴, 삼성전자 등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경쟁자 출현에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FT는 “ARM이 자체적으로 고품질 반도체 개발 나서면서 퀄컴, 미디어텍 등 고객사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ARM은 그간 삼성전자, 애플, 퀄컴, 애플, 화웨이, 미디어텍 등 세계 1000여 기업에 반도체 기본 설계도인 아키텍처를 만들어 제공하고 사용료(로열티)를 받으면서 회사를 키워왔다. ARM 기술 기반의 프로세서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ARM은 모든 반도체 제조업체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중립국이라는 의미에서 반도체 업계의 ‘스위스’라고 불린 이유다.
ARM의 최대주주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2021년 엔비디아에 매각하고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경쟁당국의 심사에 막혔고, 현재 올 가을을 목표로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투자업계는 상장 후 ARM의 기업가치가 최소 300억달러(약 40조원)에서 최고 7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기업공개(IPO)를 통해 ARM은 약 80억달러(약 10조원)을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