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유럽 최대 항공사인 루프트한자를 이끌고 있는 카르스텐 슈포어(48) 최고경영자(CEO)가 취임 1년도 안돼 리더십에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저가항공 노선 확대와 임직원 임금 삭감 등으로 잇딴 조종사 파업을 겪어온데다 자회사인 저가항공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 사건까지 겹치면서 경영 손실과 사업전략 수정 등이 우려된다.
경영 올스톱…경제손실도 눈덩이
지난주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 직후 루프트한자는 주주들에 대한 분기 배당을 취소하고 향후 투자 계획도 줄이기도 했다. 또 300억유로에 달하는 신규 항공기 투자 계획도 연기하기로 했다. 사건 수습을 위해 계획했던 사상 첫 하이브리드 채권 발행을 위한 로드쇼(투자자 설명회) 일정도 무기한 연기했다.
사실 루프트한자의 경영 사정은 이번 추락 사고 이전에도 그리 녹록치 않았다.
브리티시 에어웨이스와 이베리아, 저가항공인 부엘링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경쟁사 IAG에 대항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비용 절감을 추진해온 슈포어 CEO는 일련의 조종사 파업을 추스려야할 상황에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저먼윙스기 추락이라는 초대형 악재를 맞았다. 지난해 4월부터 조종사 노조는 간헐적 파업을 이어나갔고 지난 한 해동안에만 8600대 이상의 항공기 결항사태를 빚으며 고객들에게 항공기를 환불해준 바 있다.
실제 루프트한자는 이번 사고로 사망한 승객 1인당 5만유로(약 60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추락한 말레이시아항공 MH17기 희생자에 대한 초기 지원금 5000달러(약 554만원)에 비해 10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유족을 대표하고 있는 변호사는 “법정까지 갈지 결정하기 이른 시점이긴 하지만, 피해보상 등은 법정 밖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저가전략 수정-고객 불신 `우려`
슈포어 CEO는 “저가항공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하며 연내에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노선을 저먼윙스로 이관하고 태국, 쿠바 등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장거리 노선의 저가항공 출항도 추진해왔다. 이번 사고로 이같은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사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당분간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들을 돌보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며 “이런 상황에서 비용 절감 전략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사고 조사 과정에서 “안전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우리의 조종사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며 앞으로도 최고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식 항공기 조종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슈포어 CEO는 지난 1994년 루프트한자에 처음으로 합류한 뒤 지난해 5월 CEO직에 오르기 전까지 승객은 물론이고 화물 운송 등을 담당하는 임원직을 맡았다. 최근까지도 에어버스 A320기 조종 자격증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시뮬레이션 비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개인 항공 컨설턴트인 존 스트릭랜드는 “이런 훈련을 받음으로써 슈포어 CEO는 기술적 절차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같은 사고의 책임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사고는 조종사 선발과 교육 과정에 관한 한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갖고 있다는 루프트한자의 자부심에 상처를 줄 정도로 충격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루프트한자가 고객들에게 다시 안도감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안전에 관한 보다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 루프트한자의 주가는 루비츠 부기장이 의도적으로 비행기를 추락시켰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뒤로 지난 주말 4개월만에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 등을 앓았던 부기장 한 명의 문제로 인해 야기된 사건이며 회사측의 기술적 결함이나 부주의는 크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루프트한자의 이미지나 명성에 아직 큰 타격이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