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선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4년 12월 24일.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이날 밤 ‘기적’이 일어났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프랑스 북부 독일 점령지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롤이 울려 퍼진 것이다.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던 독일군과 영국·프랑스군 양측은 참호를 걸어 나와 악수를 건네고 담배를 나눠 피웠다. 전사자의 시신을 함께 수습한 뒤에는 양 측 간 축구경기도 열렸다. 잠시나마 죽음의 땅은 평화의 땅이 됐다. 이른바 ‘크리스마스 휴전’이다.
6.25전쟁 이후 62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아름다운 광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애기봉 등탑 크리스마스 트리를 두고서 남북 간에 첨예한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일부 단체가 애기봉 트리에 점등을 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북한은 ‘애기봉 점등식은 종교행사라는 미명 아래 우리를 자극하려는 일종의 심리전’이라고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올해 애기봉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되지 않았다. 남북 간의 갈등 외에도 ‘남남 갈등’과 북한의 위협에 떨어야 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기봉 등탑 설치계획 철회로 비상근무를 서야 했을 해병대 대원에서부터 고위 군 관계자까지 크리스마스다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됐다.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애기봉 점등 행사 취소로 연말연시 대비태세 긴장감이 작게나마 해소됐다’고 입을 모았다.
애기봉 트리의 첫 시작은 평화를 기원하는 취지였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오인사격이 일어나는 등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한 병사가 나무에 전구를 달았던 것이 애기봉 트리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기독교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애기봉 트리는 북한 주민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트리를 둘러싼 역설적인 대한민국의 모습에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남북 간에 소통과 공감이 없다보니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내 몸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공감’하는 것부터가 사랑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우리 남북 이웃 간에도 이런 이해심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