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수은 기자] 지난 주말, MBC 예능 복면가왕에서 ‘황금락카 두통썼네’가 가면을 벗었다. 바로 인기 아이돌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루나였다. 4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방청객들과 네티즌 수사대는 ‘황금락카’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애썼다. 방송이 끝나면 ‘황금락카 두통썼네’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톱10에 올랐다.한 달 반만에 얼굴을 드러낸 아이돌 가수에게 대중은 박수를 보냈다. 그동안 그가 들려준 노래에 대한 화답이었다. 루나는 방송에서 “온전히 목소리로 모든 걸 보여줘야 했기에 힘들었지만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아이돌그룹 멤버에서 한 명의 독립된 가수로 다시 빛나는 순간이었다.
| MBC ‘복면가왕’의 출연자들이 쓰는 가면은 얼굴을 가림으로써 가창력을 드러내게 하는 역할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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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루나가 여느 경연프로그램과 같은 방식으로 노래했다면 대중에게 지금과 같은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복면가왕’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복면(가면)’이라는 아이템의 기묘한 역설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가면은 얼굴을 감추기 위해 쓰는 물건이다. 또 속뜻을 감추고 거짓된 모습을 보일 때 ‘가면을 썼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쓴 가면은 은폐의 기능과는 전혀 상반된 가면의 쓰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외모를 가렸기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가창력이 더욱 드러났다. 가면 덕분에 출연자는 대중이 알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대중은 그런 출연자를 보면서 ‘누굴까’ 궁금해하며 목소리와 제스처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여기서 가면은 오히려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비유’를 떠오르게 한다. 그림자를 보는 사람들은 그림자가 전부인줄 알았지만 정작 본질은 그림자 너머에 있었던 것처럼, 루나라는 가수의 본질도 상품화된 아이돌의 외모가 아니라 가수 본연의 실력, 노래에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대중에게 호기심과 긴장감을, 출연자에게는 외모와 인기에 가려진 가창력을 마음껏 펼치게하는데 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 가수들은 한목소리로 “자신들에 대한 ‘편견’을 깨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아이돌가수는 외모와 퍼포먼스가 우선이라는 세간의 시선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고 말하지만 (남들에게) 지금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겨지는 시대도 없을 것 같다. 여전히 외모와 스펙으로 손쉽게 개인을 평가한다. 남들이 인정하는 기준, 객관적 지표를 빙자한 잣대로 한 사람을 가늠한다는 건 다시 생각해보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복면가왕은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몇 주간 가면을 써야하는 출연자들을 보여주면서, 편견이 얼마나 개인에게 폭력적인 것인지를 이와 동시에 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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