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31일까지 임기를 6개월여 앞둔 버냉키 연준 의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의회를 중심으로 교체론이 대두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기의 한 복판에서 나름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 단명?
미국 연준 의장은 대통령의 임명과 의회 상원의 추인을 얻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임기는 4년인데, 대통령이 "오케이(OK)" 하면 연임할 수 있다. 의장직에서 짤린다 해서 바로 집에 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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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의장이 내년 1월 의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2020년 1월말까지는 연준 이사로서 통화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연준의 7명 이사의 임기는 무려 14년.
지난 30여년간 미국 연준 의장은 총 3명으로 1979년 카트 정부에 의해 임명된 폴 볼커와 1987년 레이건 정부에 의해 임명된 앨런 그린스펀, 그리고 지난 2006년 임명된 버냉키다.
전임자들의 임기는 각각 8년과 20년. 이번에 버냉키 의장이 교체된다면 최근 30년래 가장 단명한 의장으로 남게 된다.
버냉키 의장에 대해 의회와 은행권을 중심으로는 "비호감"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특히 지난 달에는 버냉키 의장에 대한 의회의 반감이 더 커지는 일이 벌어졌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 합병 과정에서 연준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버냉키 의장은 상원 청문회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청문회에 나온 은행 관계자들은 "금융위기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버냉키 의장이 합병에 나서도록 위협했다"고 진술했고, 공화당 의원들은 "BOA-메릴린치 합병과정에서 연준이 자신들의 행위를 은닉하려 했다"며 버냉키 의장을 몰아세웠다.
프린스턴 대학의 줄리언 젤리저 교수는 "금융위기가 그의 임기 동안 발생했지만 그가 초래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분명한 것은 그의 재직기간중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 안정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 오바마의 생각은?.. "음.."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달 23일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힌트가 될 수 있다.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버냉키 의장의 연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무를 훌륭히 해냈다"고 칭찬했다.
무엇보다 버냉키 의장이 위기 상황에 맞서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추고, 국채 매입에 나서며 정부의 부양책에 발맞춘 공로도 적지 않다.
지난 1996년~99년 연준 부의장으로 일했던 앨리스 리블린은 "버냉키 의장이 위기 속에서도 훌륭히 할 일을 해냈다"며 "그는 중앙은행장으로서 매우 어려운 시기에 테스트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온라인 트레이딩 사이트인 인트레이드닷컴(Intrade.com)의 네티즌 여론조사에서도 버냉키 의장이 연임될 것으로 보는 의견이 60%로 우세했다.
◇ 막강해진 연준의 역할..큰 그릇에 담아야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금융감독 체계 개편으로 연준이 막강한 감독권을 갖게 됨에 따라 의장직에는 합당한 인물을 앉혀야 한다는 여론도 갈수록 비등하고 있다.
의회 심의중인 `오바마의 감독개편 플랜`에 따르면 연준은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 나아가 금융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기업까지 감독하게 된다.
금융시장 안팎에선 금융위기의 징후를 제때 경고하지도 못했고, 지난해 금융위기의 한 복판에서 우왕좌왕하며 `패닉키(panicky)라 불렸던 버냉키 의장이 과연 새로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연준의 권한 강화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도 적지 않다.
크리스 도드 상원 은행위원장은 지난달 "교통사고를 낸 아들에게 더 크고 빠른 차를 사주는 꼴"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조지워싱턴 대학의 필립 스웨젤 교수는 "만일 버냉키 의장이 재임명되더라도 어려운(tough) 청문회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6일(현지시간) CNN머니는 "현 상황에선 그가 연임하는게 더 이상하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