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은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주목받았지만, 1991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이어진 학생·청년들의 분신 자살을 질타하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실으면서 민주화운동 진영과 갈라서게 됐다. 2012년 대선 때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해 ‘변절’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이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류근 시인은 김 시인의 별세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영 논리 따위 모르겠다. 영욕과 애증, 탁월한 서정시인으로 기억한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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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확 시인은 “김지하는 한 시대의 정신이었다”고 회고하면서 “한국문학, 한국 민주주의는 김지하에게 빚진 바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널리, 많이 알려진 작가 중의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가장 몰이해되거나 오독되고 있는 작가 중의 한명”이라고 썼다.
이시영 시인은 “온갖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하고 김지하 시인이 오늘 영면하셨다”며 “부디 저세상 건너가시가던 새벽이슬 젖은 아름답고 고운 꽃망울 많이 피우소서”라고 적었다.
토지문화재단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한 끝에 8일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1세.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경찰에 맞아 숨지고 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칼럼을 기고해 엄청난 논란을 불러왔다. 진보 진영에서는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 시인은 10년 뒤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칼럼과 관련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명했으나,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가 하면 진보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노골적으로 매도하는 등 혼란스러운 행보를 보였다가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인 김원보 작가·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김지하 시인의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이다. 장지는 부인이 묻힌 원주 흥업면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