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부실 회계시스템

  • 등록 2014-05-01 오후 4:00:00

    수정 2014-05-02 오전 8:18:17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세월호 참사는 1997년 외환위기처럼 모든 사회 경제 시스템을 바꿔놓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고장 난 시스템이 낱낱이 까발려지면 언젠간 정부도 메스를 들게 될 테니까요”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같이 말했다. 청해진해운 등 세모그룹 계열사를 감사한 회계법인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회계업계도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비상장기업을 감리하는 한국공인회계사회도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진 뒤 부랴부랴 세모그룹 비상장 계열사에 대한 감리 절차에 착수했다. 감리란 회계법인이 회계기준에 맞게 감사 절차를 진행했는지 검증하는 일을 말한다.

만약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세모그룹 비상장 계열사들은 감리를 받았을까.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청해진해운의 외부 감사인은 13년간 ‘적정’ 의견을 냈지만, 이들을 감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턱없이 취약하다.

상장사는 금융감독원이, 비상장사는 공인회계사회가 나눠 감리하지만, 공인회계사회 소속 감리인원은 14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2만개의 비상장사에 대한 감리를 맡고 있어 회사와 회계사가 짜고 마음대로 분식회계를 저질러도 이를 색출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2001회계연도부터 2013회계연도까지 13년간 ‘세광공인회계사 감사반’ 한 곳에서만 외부감사를 받아왔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상 감사반은 한 기업을 얼마든지 연속해서 감사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 회계법인의 경우에도 2011년에 개정된 외감법에 따라 같은 기업을 계속해서 감사할 수 있게 돼 있다.

감사인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연속 감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이 제도로 인해 감사인과 기업 간의 유착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상장기업들은 9년마다 외부감사인을 교체토록 하는 내용이 외감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언론사나 시민단체 등 제3자가 기업의 분식회계 징후를 포착해도 관계당국으로의 제보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금감원은 신고인이 정확한 분식회계 금액과 규모, 근거 등을 제시하지 못하면 감리에 착수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마치 도둑의 간략한 인상착의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몽타주를 그려내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지금처럼 검찰이 해당 기업과 회계법인을 압수수색하고 나선 판국에는 회계감리 시스템은 먹통이 된다. 감리를 하려면 해당 기업이 작성한 재무제표 원본이 필요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이유로 압수수색한 자료를 다른 기관과 공유하지 않는다면, 회계전문가가 아무리 많아도 감리를 진행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는 정부의 재난관리 시스템뿐만 아니라, 기업의 회계감사, 감리 시스템도 도마 위에 올려놨다. 예방은커녕 사후 감리도 제대로 안 되는 시스템이라면 당장 나서서 고치는 게 맞다. 기업의 부실 징후만 미리 포착했어도 수백명의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한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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