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조달러가 움직이는 트레이딩 룸을 가다

UBS의 세계 최대 단일 트레이딩 룸..축구장 2개 넓이
1700명 트레이더가 2000대 PC, 5000대 모니터 사용

  • 등록 2006-12-13 오전 11:04:17

    수정 2006-12-13 오후 1:36:48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1조달러. 세계 외환시장의 일일 거래규모이자 세계 최대인 중국의 외환보유고를 지칭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800조원(약 8000억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1조달러가 얼마나 큰 돈인지 잘 알 수 있다.

언뜻 들어서는 그 위력을 실감하기도 힘든 이 1조달러가 단 하나의 방에서 오고가는 곳이 있다. 바로 스위스계 투자은행 UBS의 코네티컷 주 스탬포드 딜링 룸이다. 스탬포드는 뉴욕 맨해튼에서 1시간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조용한 도시로 UBS, 톰슨 파이낸셜 등 유명 금융기관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16일(현지시간) 단일 트레이딩 룸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이 곳을 방문했다.

UBS는 맨해튼 파크 애비뉴에 위치한 미국 본사의 건물이 너무 협소하다는 판단 하에 지난 1997년 스탬포드에 12에이커의 부지를 매입했다.

단일 건물로는 미국 내 8위에 해당하는 UBS 스탬포드 비지니스 센터 안에 위치한 이 트레이딩 룸은 2002년 봄 현재와 같은 규모를 갖추게 됐다.

◆ 하루 거래규모 1조달러..인원 너무많아 난방도 필요없어

첫 인상부터 `압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축구장 2개 혹은 테니스장 26개 넓이와 맞먹는 면적을 가진 이 방에는 총 1700명의 트레이더들이 숨가쁘게 움직인다. 이들이 사용하는 집기만 해도 PC 2000대, 모니터 5000대, 전구 3600개에 달한다. 전구의 경우 18개월마다 한 번씩 갈아줘야 하는데 교체 작업에만 10주가 걸린다.

물론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UBS의 경쟁 투자은행들도 대형 트레이딩 룸을 보유하고 있다. 기자는 맨해튼에 위치한 타 투자은행의 트레이딩 룸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UBS의 트레이딩 룸은 일단 그 규모 면에서 타 투자은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안내를 맡은 UBS 관계자는 "여기에서 하루 37만건의 금융 거래가 일어나고 그 규모는 총 1조달러에 달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1/12~1/13이 이 방에서 거래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른 금융회사의 경우 주식, 채권 등 각 분야의 트레이더들을 분리해서 놔두지만 UBS는 주식, 채권, 외환, 에너지, 파생상품 등 UBS 소속의 모든 트레이더들을 이 방에 집합시켜 놓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흥미로운 것은 겨울에도 이 방에서는 전혀 난방을 하지 않는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강한 열을 발산하는 PC 등의 전자제품을 쓰기 때문에 난방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브라운관 모니터가 LCD로 바뀐 뒤에 가끔 감기에 걸린 직원이 난방이 필요하다고 불평하는 일은 있다고.

만약 전기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전원이 꺼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UBS 관계자는 "무정전 전원 공급장치(UPS)가 있어 걱정이 없다"며 "2002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넘겼다"고 설명했다.

◆초긴장의 트레이더들.."1초에 수백만弗 왔다 갔다..0.01%p 수익과 승부"

이 트레이딩 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시카고 상품거래소 등과 달리 객장에서 시끄럽게 소리치는 브로커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만 더 깊숙히 들어가보면 이 곳역시 흥분과 탄성, 실의와 눈물이 교차하는 전쟁터임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1bp(0.01%포인트)와 싸우는 사람들. 트레이딩 룸에 근무하는 트레이더들을 흔히 이렇게 일컫는다. 국제 금융시장의 작은 움직임을 포착해 그 안에서 엄청난 이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1초에 수백만달러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초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이익을 내면 다행이지만 아차 하는 순간 실수라도 하면 그 손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경제, 정치, 외교적으로 큰 사건이 있는 날일수록 트레이더들은 숨죽이며 모니터와 팽팽한 대치를 계속할 수 밖에 없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시간은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 시간이 됐는데도 일어나서 밥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1700명의 트레이더 대부분이 책상 위에 놓인 생수 병만 연거푸 들이키거나 라인 별로 배치된 간식 코너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가져와 씹는둥 마는둥했다.

트레이더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키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더군다나 이날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마지막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하는 날. 누구나 금리 동결을 예상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FOMC가 아닌가. FOMC 성명서를 기다리는 트레이더들의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평균 업무 시간은 6시 반에서 저녁 6시 정도. 회사에서 정해놓은 출퇴근 규정도 없다. 하지만 더 일찍 나와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직원들이 더 많다. 아시아 담당 트레이더의 경우 미국 금융시장이 문을 닫은 밤 늦게까지도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

트레이더들의 평균 나이는 어떨까. 20대 후반~30대 초반이 제일 흔하다. 극도의 긴장감이 요구되는 트레이딩 업무의 속성 상 30대 중반 이후가 되면 이 방에서 버텨내기가 힘들다고 했다. 특히 요즘에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려, 이 방에서 잘 교육받는 직원들이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로 옮기는 경우도 잦다. 비싼 돈을 들여 직원들을 교육시키지만 결국은 남 좋은 일을 하는 셈이다.

물론 돈은 많이 받는다. 산술적으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갓 입사한 직원이 평균 15만달러 정도를 받고 3~4년 후에는 40~50만달러로 연봉이 뛴다.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능력껏 받는다.

UBS 관계자는 "반드시 아이비 리그를 졸업하거나 MBA를 소지하고 있어야 트레이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이 방에 들어오면 처음에는 누구나 시니어 트레이더로부터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며 "트레이더로서 가장 큰 덕목은 자르기(cut)"라고 말했다. 이익과 손실에 냉정하게 대처하고 엄청난 돈이 왔다갔다하는 긴장감을 극복하려면 단호한 태도가 첫 번째라는 의미다.

비록 UBS가 미국계 투자은행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방에, 이 많은 사람들을 몰아넣고 1조달러를 오가게 하는 모습은 분명 미국식 자본주의의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UBS 관계자에게 이 말을 했더니 그 역시 "나도 UBS에서 일하지만 이 방을 볼 때마다 항상 놀란다"고 웃으며 답했다. 방을 나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휴하고 나왔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왠지 이 방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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