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엔 없는 '중국냉면'…넌 어느 별에서 왔니?

한국 입맛에 맞춰 토착화한 중식
국물 많고 새콤달콤… 계속 진화해
  • 등록 2008-05-08 오후 12:00:00

    수정 2008-05-08 오전 11:05:10

▲ 흑식초로 맛을 낸 중식당 "루이"의 중국냉면. / 조선영상미디어 허재성 기자
[조선일보 제공] 중국냉면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언제부턴가 여름이면 중국집에 '중국냉면 개시'라 붙는다. 시원하면서 새콤달콤한 맛으로 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려주는 별미다.

중국냉면이 분명 중국집에서 파는 중식이지만, 정작 중국에는 없다. 전문가들도 중국냉면의 기원을 딱 떨어지게 설명 못한다. '네발 달린 건 탁자 빼고 다 먹고, 하늘에 나는 건 비행기 빼고 다 먹고, 물에 헤엄치는 건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이니만큼 비슷한 건 있다. '량면(凉麵)'과 '건반면(乾拌麵)'이다. 중국음식에 정통하다는 신라호텔에서 최근 독립, 서울 중구 C스퀘어 빌딩에 중식당 '루이(Luii)'를 낸 여경옥 셰프는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량면은 중국 동북지역에 사는 조선족들에서 퍼지기 시작했지만 흔하거나 즐겨 먹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건반면은 땅콩 소스에 국수를 빡빡하게 비벼 먹는 스타일이라 냉면과는 크게 다르다.

여 셰프는 "중국냉면이 일본에서 화교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한국으로 들어온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일본에는 소바(메밀국수)나 냉우동처럼 차게 먹는 국수요리가 많잖아요. 일본 화교들이 한국에 소개한 것 같아요." 신계숙 배화여대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도 "중국에는 분명 없는 음식"이라면서 "한국 화교들이 여름에 팔려고 만들어낸 것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자장면이나 짬뽕처럼 한국사람 입맞에 맞춰 토착화한 한국형 중식이라는 것이다.

자장면이나 짬뽕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맛과 이미지가 있지만, 중국냉면은 없다. 들어가는 재료나 맛이 중식당마다 다르고, 해마다 바뀐다. 여 셰프는 "30년 전 중국냉면을 처음 들었고, 흔해진 건 10여 년 전쯤인 것 같다"고 했다. 역사가 짧다 보니 아직 전형(典型)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전형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건, 중국냉면이 진화 중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피맛골 '신승관(02-735-9955)'은 중국냉면의 초기 형태를 맛볼 수 있다. 국물은 닭 육수를 기본으로 식초와 설탕을 더해 새콤달콤하게 간 하고, 땅콩버터를 풀어 고소한 맛을 더한다. 중식에 땅콩버터라니 생뚱 맞기도 하다. 여경옥 셰프는 "사천지방에서는 참깨로 만든 '깨장'을 많이 쓰는데, 한국에서 구하기 힘드니까 땅콩버터로 대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수를 말고 새우, 해삼, 해파리, 달걀 지단, 중국식 쇠고기 장조림, 오이, 염장한 가죽나물 따위를 얹는다. 자장면이나 짬뽕과 같은 중력분 밀가루 국수를 사용하는데, 차가운 국물에 먹기에는 국수가 너무 굵고 딱딱하다. 다 먹으면 턱이 아플 정도다. 5000원 받는다.

한 단계 진화한 중국냉면은 서울 명동 옛 중국대사관 앞 '향미(02-773-8835)에서 만났다. 새콤달콤한 닭 육수에 땅콩버터를 푼 점이나 고명은 신승관과 같지만, 면발이 가늘고 납작해서 훨씬 부드럽다. 새콤한 맛은 약하고 단맛과 고소한 맛이 강하다. 주인은 "미리 말하면 땅콩버터는 따로 주기도 한다"지만, 기본적으로 땅콩버터가 풀어 나오는 국물은 진하다 못해 걸쭉해 콩국수 국물 같다. 가격은 6000원.

서울 연남동 '매화(02-332-0078)'는 시금치를 넣어 파랗게 색을 낸 국수가 특징. 비취와 색이 비슷해서인지 '비취냉면(7000원)'이라 부른다. 손으로 뽑은 수타면이라 앞의 두 식당 중국냉면보다 훨씬 부드럽다. 땅콩버터가 종지에 따로 나온다. 국물에 풀던 땅콩버터를 그릇 안쪽에 발라 내더니, 종지에 따로 내는 것이 최근 일반적인 서빙 방식이다. 텁텁한 국물을 싫어하는 손님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 지단 대신 메추리알을 얹은 건 한국 냉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설탕에 절인 매실과 매실즙으로 간을 맞춘 '매화냉면(7000원)'도 있다.

루이(02-736-8889)의 중국냉면은 일반 식초보다 지방 분해효과가 높은 흑식초를 사용하는 등 재료를 고급화했다. 국물도 더 맑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땅콩버터를 넣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식초 맛이 강한 중식당들도 있지만, 루이의 중국냉면은 신맛이 은은해서 그대로 먹어도 좋을 정도다. 단 흑식초 특유의 묵은 듯한 맛에는 거부감 느낄 손님도 있겠다. 중력분을 기계로 뽑지만, 자장면이나 짬뽕보다 더 가늘고 더 많이 삶는다. 딱딱하지는 않지만 수타면 같은 매끄럽고 보드라운 촉감은 부족하다. 8000원으로 네 집 중 가장 비싸지만 맛은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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