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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소현·장순원 기자] 국제유가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유가에 짙게 밴 경기둔화 그림자를 눈치챈 주식시장도 동요하기 시작한 반면 안전 자산 쪽은 몸값이 훌쩍 뛴 상태다. 당분간 국제유가를 끌어올릴 재료가 없어 유가와 주가는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돈 줄이 마르기 시작한 중동 오일머니(Oil Money)는 유동성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低유가는 구조적 문제‥50달러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지난 12일(현지시간) 기준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57.72달러를 기록해 지난 2009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했다. 국제유가는 지난 6월 이후 40% 가량 폭락한 상태다. 이는 공급과잉과 수요둔화 두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지난달까지만 해도 공급과잉 우려가 컸지만, 최근 세계경기가 부진한 모습을 이어가면서 수요둔화 걱정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수요일 OPEC은 내년 석유수요를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전망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도 내년 수요가 애초 전망보다 23만배럴 감소한 하루 9330만배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분간 유가 하락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공급과잉은 해소되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산유국이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한편 미국 셰일을 견제하려 공급량을 유지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알리 빈 이브라함 알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지난 10일 “왜 우리가 석유를 감산하냐”며 감산 가능성을 일축했다. 석유 최대 소비국 중 하나인 중국과 유럽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어 수요도 단기간에 늘어나기 쉽지 않은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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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하락 경기둔화의 징후‥위험자산 매도 러시
유가 하락은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유가 하락을 경기둔화의 징후로 해석해서다. 이런 걱정은 주식이나 회사채 같은 위험자산에 직격탄이 됐다. 지난주 미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지수는 3.5%나 하락했다. 특히 S&P 에너지섹터는 지난달 이후 18%나 급락한 상태다. 부실회사채 금리는 7%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반면 안전자산은 몸값이 뛰고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08%까지 내렸고, 달러나 엔화처럼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통화는 가치가 뛰어올랐다.
돈줄 마른 중동 산유국 오일머니 흡수‥韓 주식시장 투자 축소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오일머니의 위세도 주춤하고 있다. BNP파리바는 배렬당 70달러 수준의 유가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OPEC 국가들이 오일머니 투자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3160억달러(351조5000억원)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당장 돈줄이 마른 OPEC 국가들은 시장에서 유동성을 빨아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우리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는 우리 주식시장에서 번갈아가며 순매수 상위 5위 안에 들었고, 아랍에미리트는 지난 5월 한달동안 1조1700억원 넘게 주식을 쓸어담았다. 그런데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하반기 들어서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중동 국가들이 자취를 감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수규모도 7월 5570억원에서 10월 3030억원, 11월 1740억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류용석 현대증권 투자정보팀장은 “현재 유가는 중동 국가들이 재정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현재의 유가가 이어진다면 국내 증시에서 오일 머니가 매수를 안 하거나 오히려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