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 다음날인 지난 5일 오전 찾은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M공인 대표는 대뜸 한숨부터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용산 통합 개발’ 재개 공약이 끝내 공수표가 된 것에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용산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동산업계의 최대 관심지역이었다. 지난 3월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가 지난해 무산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재추진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정 후보는 한강변 주거지역인 서부이촌동과 용산역 일대 철도정비창 기지를 다시 단계적으로 개발하겠다고 공약했었다. 하지만 석달여간 서부이촌동을 들썩이게 했던 ‘봄 꿈’은 통합 개발을 반대해 온 박원순 시장 재임과 함께 끝이 났다.
용산, 낡은 주거지부터 개발…주민은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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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용산 민심은 통합 개발 공약에 흔들렸다. 지방선거 개표 결과, 정몽준 후보는 용산구에서 총 5만8479표(49.93%)를 얻어 5만7807표(49.36%)를 획득한 박 당선자를 근소한 차로 앞질렀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강남·서초구를 제외하고 정 후보가 박 당선자보다 많은 표를 얻은 곳은 용산구 뿐이다. 그만큼 개발 지지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선거 중 꿈틀댔던 집값은 다시 예전 시세로 돌아갔다. 현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 지역 대림·성원 아파트 전용면적 59㎡형의 매도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값)는 과거 5억원 중반에서 선거전이 시작된 올해 3월엔 2000만~3000만원 가량 오르기도 했다. 이복순 용산365공인 대표는 “통합 개발 얘기가 나오면서 투자 문의가 늘었다가 지금은 다시 잠잠해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큰 통합 개발보다는 현실성 높은 소규모 개발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촌시범 아파트 주민 김모(34·여)씨는 “주로 나이 많은 주민들이 크게 개발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믿는 탓에 통합 개발을 원했다”며 “하지만 작게라도 차근차근 개발하는 것이 재개발이 안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했다. 임현택 부동산뱅크 대표는 “구체적 계획 없는 통합 개발보다 분리 개발이 오히려 안정적인 사업 방향”이라며 “낡은 주거지를 우선 개발하면 전반적인 주거 환경 개선 효과로 이 일대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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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방문한 서울 은평구 수색동의 Y공인 대표는 선거 얘기에 뚱한 반응을 보였다. 수색권역은 용산과 달리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수혜지 중 하나로 떠오른 곳이다. ‘강북판 코엑스’라 불리는 수색역세권 개발 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박원순 시장이 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색역 일대 철도부지(약 15만㎡)는 연면적 44만㎡규모의 복합 단지로 개발된다. 이곳에는 백화점, 호텔, 업무·문화시설이 들어서 서북권 광역 중심지로 육성된다. 또 낙후된 수색동은 창조경제 거점으로 선정된 상암DMC(디지털미디어시티)의 배후 주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1993년 은평구 도시기본계획 안에 처음으로 수색역세권 개발 계획을 담은 이래, 선거철만 되면 단골로 나왔던 공약인 탓이다. 주민 정모(58)씨는 “건설 경기 불황으로 입지가 좋은 용산도 개발이 안 되는 마당에 이곳 개발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워낙 자주 나온 얘기라서 주변에서도 기대감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개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컸다. 주민 조기태(73)씨는 “뉴타운 개발 추진 과정에서 시장을 폐쇄해 상권이 죽고 동네도 활력을 잃었다”며 “지역 활성화 방안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근 멘토공인 이상규 대표는 “수색동 아파트값은 상암동의 같은 면적 아파트 전셋값 수준”이라며 “실제 개발이 되면 이 지역 부동산 시장에 큰 호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