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 당신의 꿈의 작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

  • 등록 2013-07-29 오전 10:19:49

    수정 2013-07-29 오전 10:20:58

[이윤지 아나운서] 이달 초 우리나라가 주제국으로 참가한 2013 도쿄국제도서전 개막식의 진행을 맡았다. 전 세계 출판문화 교류의 전시장답게 ‘느낄’ 거리가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다치바나 다카시 도쿄대 교수와 ‘디지털시대, 왜 책인가’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인생의 책은 어머니이다. 우리는 글에 앞서 말을 배우며 결국 책 또한 소리의 세계이다. 앞으로는 시각과 청각에 아날로그 감성까지 더해진 디지털 책이 반드시 만들어질 것이다.” ‘책 또한 소리의 세계이다’라는 구절에 유독 마음이 와닿는다. 북 콘서트를 진행하며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의 매력을 느끼기 때문 일 것이다.

북캐스터로서 처음 북 콘서트를 진행할 때는 낭독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어떤 목소리로 전해야 할지 종잡을 수도 없었다. 진지하게 읽자니 혼자만 분위기를 잡는 것 같고, 그렇다고 친구에게 말을 건네듯 편하게만 낭독하려니 혹시라도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작가의 취향이 아니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하지만 요즘은 은근히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책 내용에 푹 빠져 전할 뿐 아니라 입으로 한 자 한 자 낭독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참 신기한 것이 분명 눈으로 이미 보았던 내용인데 같은 구절을 소리 내어 낭독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마음 속으로 읽을 때는 어린아이가 푸르른 들판을 후다닥 신나게 달리는 듯 하다. 하지만 입으로 낭독할 때는 마치 눈이 내린 뒤 아무도 밟지 않은 공터를 처음 발견한 뒤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기분과 같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종이 위로 올라와 가슴 속에 뽀드득 뽀드득 새겨지는 듯하다.

이렇게 낭독을 마치면 작가들께서 “이게 제가 쓴 글이 맞나요? 잘 썼네요!”라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으니 새롭다고 말하곤 한다. 이럴 때면 같은 문장과 동일한 이야기일지라도 살아온 인생과 생각이 다른 또 다른 이가 낭독할 때, 책의 모습과 향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독서를 마치고 혼자 노트를 작성하며 곱씹어볼 때와 그것을 소리내어 누군가와 수다 떨며 나누어보면 역시 또 다른 발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성대의 울림을 타고 세상 밖으로 나온 문장들은 공기의 울림을 통해 다시 나의 귀로, 머리로, 가슴으로, 미소로, 눈물로 전해져서 보다 풍성한 눈길이 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라는 시에 푹 빠졌던 적이 있다. 어찌나 구절마다 와닿던지 이 시를 몽땅 외워 아무도 없을 때 작은 목소리로 낭독해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문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시인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님,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지요? 저도 사실은 으리으리하게 멋진 풍경도 좋지만 그냥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수다가 한창인 소소한 풍경도 아름답게 느껴져요. 음 그러니까요. 네 저도 작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요!” 그럴 때면 마치 작가와 직접 소통한 느낌이 들어 책과 더 가깝게 느껴진다.

누구나 ‘한 번쯤 직접 만나 대화 나눠보았으면’ 하는 작가들이 있다. 때로는 항상 함께해온 나의 벗처럼, 때로는 꼭 껴안고 싶은 나의 연인처럼, 때로는 유년시절에 눈물 쏙 빼게 혼내시던 호랑이 선생님으로 다가오곤 한다. 하지만 여건상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다. 대신 책을 꺼내어 밑줄 그었던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꿈에 그리던 멋진 작가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온북TV ‘수요 북콘’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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