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정오 재정경제부에서는 한성택 경제정책국장 등 핵심 정책부서 국과장들과 출입기자들간의 열띤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도시락을 들며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 등 고조되는 경제위기감과 관련해 정책 고위 당국자들과 언론간의 시각을 나누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있었으며, 정책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겪는 정부의 고민이 솔직하게 표출됐다.
토론회 참석자의 주요 발언내용을 익명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자 = 장관들의 모임은 잦은데 실제 시장의 기대에 충족하는 정책대안은 나오지 않는다. 시장의 요구가 거세니까 어정쩡하게 이에 부응하는 자세다. 시장에 완전히 맡길 것이면 장관들이 모일 이유가 뭐 있나.
▲재경부 관계자 = 증시가 요동을 치는데 가만히 있으면 또 그것으로 비난을 받는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을 재점검하지 않은 부분이나 재탕,삼탕식 대책을 발표했다는 지적에는 잘못했음을 느낀다. 그러나, 증시가 너무 과잉 민감반응하는 것도 사실이다. 민감반응한다는 게 국내 투자자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재경부 관계자 = 지난 토요일의 경우 앞으로 유가가 어떻게 될 것인가 보자 해서 장관들이 만난 것이다. 모임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다 보니 결과를 발표 안할 수도 없어 설명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재탕,삼탕 대책을 발표한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기자 = 장관들의 회의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회의에도 불구하고 대안 제시가 안되니까 그동안 누적됐던 답답함이 표출된 것이다. 정부의 낙관적인 전망과 일반인들의 체감 사이에 큰 괴리가 있던 차에 악재가 맞물려 터지면서 악화됐다. 정부가 눈에 띄는 대책을 못내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 = 2기 경제팀에서 시각이 바뀐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진념 장관은 취임 후 “거시지표는 좋으나 펀더멘털에는 문제가 있다. 엉킨 자금시장과 산업간·지역간 격차 등 실물섹터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경부 관계자 = 애초에 지난해 대우사태 발생했을 때 공적자금을 충분히 조성하는 등 완벽하게 했더라면 하는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우채권과 관련해서 개인이 20%정도 손실분담했지만 나머지는 금융기관이 떠안았다. 당시 왜 대우를 법정관리 처리하지 않았냐는 비판도 있는데, 이는 대우채권의 시장비중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워크아웃 제도가 훼손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당시 대우채권이 18조원 정도였는데 이를 편입한 펀드총액은 190조원에 달해 엄청난 환매사태가 우려돼 이를 막아야만 했다.
우방의 예를 보면 기업 구조조정에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 일각에서 부도낼 수 없다는 시그널을 강하게 보냈으나 결국 채권단은 법정관리 결정했다. 시스템 변화로 인해 기업구조조정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구조조정 투자회사(CRV)가 앞으로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금융기관들은 부실기업 처리를 직접 맡았는데 전문성이 부족해 문제가 있었다. 앞으로는 CRV가 부실기업 처리의 돌파구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국회 통과가 안되고 있어 관심을 보였던 해외 투자자들도 어떻게 되는 것인지 잇따라 문의를 하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기자 = 예금 부분보장 문제의 경우 금감위원장은 추석전에 당초계획 유지가 좋겠다고 하고, 오늘 예보도 그런 쪽으로 의견을 제시했는데, 진념 장관은 오늘자 신문 인터뷰에서 3000만∼4000만원으로 상향조정할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것이 신뢰상실을 자초하는 것이다.
▲재경부 관계자 = 부처간 논의과정에서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그 자체를 문제시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이견을 얼마나 빨리 조정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예금 부분보호는 아직까지는 큰 변화 없이 계획대로 끌고 가자는 게 기본 방침이다. 다만 시장의 요구가 있으면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0월 전반부에 결론을 낼 것이다.
이견이 있어 보이는 것은 금감위와 재경부의 기본목표 차이 때문이다. 금감위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고 공정거래를 촉진하는 기관이고, 재경부는 시장 전반의 가격결정 기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는 곳이다. 약간의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기자 = 정부발표에 따르면 유가가 35불이 돼도 성장,물가,경상수지 세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말이 되는 얘긴가.
▲기자 = 정부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대우차 문제도 그랬다.
▲재경부 관계자 = 세마리 토끼를 환상적으로 조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35불 지속시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마련해 놨다. 35불 지속시 1,2차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동요가 단기적으로 있겠으나 이를 최소화해 정상화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달라. 이 대 세마리 토끼중 어떤 것을 포기하기 보다는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소수 비관론을 기준으로 정책을 입안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책 입안시 시각은 객관적으로 견지해야 한다. 사실(fact)에 근거해서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낙관론도 비관론도 있을 수 없다.
▲기자 = 하지만 시장에는 비관론이 다수이다. 시장의 비관론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 정부가 미리 이에 대처, 대응자세를 제시했어야 한다.
▲기자 = 정부가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국민과 언론이 갖고 있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적으로 할 일이 없다면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재경부 관계자 = 증시는 이제 정말 정부가 할 일이 없다. 과거에는 외국인 한도 확대 등 컨트롤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만 정부로서는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의 장기적 제도개선책이 있을 뿐이다. 무작위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정책선택의 주요 대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