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빌 게이츠가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된 것은 기업 경영을 잘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주식 투자를 잘 했기 때문일까.
게이츠가 지금처럼 부자가 된 것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지난 20여년 간 놀라운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최고경영자(CEO)로서 기업 경영을 잘 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게이츠가 자신의 전 재산을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투자하는 대신 이 회사의 전문경영인만을 맡았다면 아마 세계 최대의 갑부 지위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 갔을 것이다.
게이츠는 창업 초기 회사를 벤처 캐피탈에 팔 수도 있었고, 동업자들에게 지분을 넘길 수도 있었다. 혹은 주식시장 상장 후 시장에서 지분을 처분할 수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엄청난 부자는 됐을지언정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주식 투자자로서의 게이츠의 실적도 기업인으로서의 게이츠의 실적만큼이나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주식 투자자로서의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에게는 몇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두 사람이 투자이론의 가장 기본인 분산투자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산투자의 원리에 따르면 투자자는 한 두 주식에 "올 인"하면 안 되고, 여러 주식, 여러 자산에 고루 고루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불필요한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이츠와 버핏은 어떤가?
게이츠 재산의 가장 큰 부분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식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다른 회사의 주식도 보유하고 있지만, 전체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버핏 또한 재산의 대부분이 버크셔해서웨이 한 기업에 투자되어 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다른 여러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서 결국 버핏이 여러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 봐도 버핏의 재산이 분산투자 원리가 말하는 것 같이 여러 곳에 골고루 투자되어 있는 건 아니다.
분산투자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 게이츠와 버핏이 시장의 평균 수익률보다 월등히 높은 투자수익을 아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얻었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투자이론에 따르면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초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 15년간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 상승에 힘입어, 재산이 5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기간 미 증시의 대표적 척도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지수는 7배 상승에 그쳤다.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도 65년 이래 40여년간 기업 가치가 200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이 같은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린 게이츠와 버핏의 투자철학에 어떤 공통점은 없는 걸까?
사실 이 둘의 투자철학은 극과 극에 가깝다. 버핏의 투자철학은 "가치투자"라는 말로 집약된다.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잘 따져보고 이를 현재의 주가와 비교해서 가치가 가격보다 높을 때만 주식을 사는 방식이다. 내적적 가치가 가격보다 높은 주식은 보통 "가치주"라고 불린다. 버핏은 평생 일관되게 가치주에만 투자를 해왔다.
게이츠는 그 반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가치주의 정반대인 "성장주"의 대표격이기 때문이다. 성장주란 기업의 실적이 빠르게 성장하고, 이에 맞춰 주가도 빠르게 성장하는 주식을 일컫는다. 성장주의 주가는 기업의 가치에 비교해 봤을 때 결코 낮지 않다. 그러니까 게이츠의 투자철학은 가치투자의 반대인 "성장투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장주와 가치주를 구분하는 게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내재적 가치라는 게 한 편으로 보면 높아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낮아 보이기도 하기 일쑤다. 실적과 주가가 빠르게 성장해 왔는지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게는 PE, 즉 주가수익비율을 보고 성장주인지 가치주인지를 결정한다. PE가 높으면 가격이 높은 거니까 성장주고, 반대로 PE가 낮으면 가격이 낮으니까 가치주로 불린다.
그런데 가치주에만 집착하는 버핏과 성장주에 베팅하는 게이츠 중 누가 더 주식투자를 잘 하는 걸까?
80년대까지는 버핏이 게이츠를 단연 앞섰다. 하지만 90년대에는 게이츠가 버핏을 훨씬 앞섰다. 이에 따라 80년대에 한참 퍼지던 "버핏 따라하기"는 90년대에 크게 위축되었고, 버핏은 "투자의 귀재"라는 호칭을 잃을 위기에까지 처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주가의 성장세가 많이 꺾이며, 버핏이 다시 명성을 회복하는 듯하다.
이렇게 보면 누굴 따라할 지 결정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 방식을 따라하는 대신 그냥 반반씩 따라하는 건 어떨까? 절반은 가치주에, 나머지 절반은 성장주에. 버핏과 게이츠 같은 고수들이야 분산투자를 안 해도 고수익을 올리지만, 일반일들에게는 분산투자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는게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본일게다.
[김대환 아메리칸대학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