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들을 위해 각종 문화 예술 정보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일을 하다 보면, 순수 여행 콘텐츠들인 명소와 작품, 역사, 생활 등을 소개할 때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건축에 관련된 것들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성당, 궁전, 기념물, 다리, 문, 탑 등이 모두 건축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데, 각론을 넘어서서 도시 전체를 개괄할 때면 각 나라 대도시의 장단점이 비교가 되면서 한눈에 파악이 된다. 이럴 때면 자연히 서울이나 부산 같은 한국의 대도시들이 떠올라 비교 대상이 되곤 한다.
거의 모든 대도시들이 구시가지와 신도시를 갖고 있다거나, 강을 끼고 발달했다는 쉽게 눈에 띄는 공통점들도 비교 대상이지만, 도시 전체의 미학에 관심을 갖고 보면 단연 뉴욕 같은 대도시를 우선 꼽게 되고 서울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가 몬드리안의 미학적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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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은 신비주의에 경도되었던 시절도 있었고 화가로 활동하면서도 평생 이러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몬드리안에게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어야만 했다. 비단 몬드리안만이 아니라 20세기 초 많은 젊은 화가들이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 생각으로부터 전위적인 실험작들이 나왔으며 추상화가 태어났다. 몬드리안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칸딘스키, 피카소, 마티스 등이 모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칸딘스키는 어느 날 자기 집에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서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못박힌 듯이 섰다. 지저분한 집안 한 켠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 것인데,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깜짝 놀라 가까이 가보니, 언젠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거꾸로 놓여있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칸딘스키의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내가 조금 전에 느꼈던 아름다움은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고 받은 느낌이었는데, 그렇다면 그림의 아름다움은 대상과는 무관한 것 아닌가……” 이 의문은 그를 십 년 가까이 사로잡았고 그 결과 나온 그림들이 서정적 추상화로 분류되는 그의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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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이른바 컴퍼지션 연작들은 삼원색과 수평 수직선의 거의 기계적인 바리에이션이라고도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연히 규칙성과 기하학적 명석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도안의 분위기가 나는 그림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고 제작하여 발표한 감각은 선구자적인 것이었으며 종교적 심원함이 그림의 밑바탕에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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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뉴욕으로 건너오기 전인 1920년경 흔히 '신조형주의'로 불리는 독특한 스타일을 창안해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형태와 색을 단순화시킨 그림들을 그렸다. 그림들은 직선과 직각, 검은색의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삼원색의 색면으로 분할된 일정한 형식성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는 선의 상징적 의미와 우주의 수학적 구성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직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뉴욕은 바로 이 수직으로 서로 교차하는 선들과 그 선들이 만들어내는 사각형의 면들로 구성된 도시였다.
하지만 몬드리안은 자신의 그림과 맨해튼이 다르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다름 아니라 그의그림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뉴욕에는 온갖 종류의 소리가 바둑판 같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말이었지만, 자동차 소리 같은 소음으로 가득 찬 뉴욕의 거리는 나치를 피해 뉴욕에 온 몬드리안에게는 소음이 아니라 삶의 활기로만 느껴졌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생명성이 발현된 모종의 외침으로 들렸다.
그러다 브로드웨이에서 강렬하면서도 불규칙한 리듬의 재즈를 듣는 순간 몬드리안은 뉴욕의 소리를 생명의 외침으로 파악한 자신이 옳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 순간 몬드리안은 붓을 들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현재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관 중 하나인 뉴욕 현대 미술관인 모마MoMA에 있는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 Woogie >이다. 이 작품을 완성시킨 후 급하게 다시 한 점을 더 그리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이 <빅토리 부기우기, Victory Boogie Woogie>다.
랜들 플랜이 만들어 낸 맨해튼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잘 보면, 이전의 몬드리안의 그림들과 다른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캔버스에서 검은 색들이 사라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전의 그림들을 압도하던 검은 색의 수직선과 수평선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크고 작은 사각형의 점들이 그림 곳곳에 나타나있다는 점이 보이는데, 마치 유전자 지도를 그래픽으로 처리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크고 작은 사각형들은 음악적 리듬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 리듬이 바로 부기우기의 리듬일 것이다.
뉴욕을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고, 또 가보지 않았어도 뉴욕 맨해튼의 지도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가 그 미학적 의미를 제쳐둔다면, 마치 맨해튼의 한 구역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이스트 42번가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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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드리안은 뉴욕 맨해튼에 매료되었다. 부기우기라는 재즈의 선율,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 전쟁의 공포를 벗어난 안도감 등이 작용을 했겠지만, 몬드리안의 그림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현대 회화가 현대 도시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미술 형식임을 잘 일러준다.
건축가들은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면서 도시 설계의 원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몬드리안은 평생 순수성을 추구한 화가다. 여기서 순수성이란 비상업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와 색의 순수성, 즉 다양한 사물들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추상적 원리를 말한다. 이 형태와 색의 순수성은 단순하고 근원적인 것이며, 그래서 그만큼 보편적이며 수많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순수성은 동시에 엄청난 자제와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요구한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수직선 수평선을 이동시키고 색면의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수많은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뉴욕에 오기 전에 그린 그의 그림들은 작품들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수직선과 수평선은 사라지지 않고 그림의 변화를 통제하고 있다. 그 결과 그림은 이른바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질서와 혼란의 대립을 넘어서서 벌어지고 있는 축제를 보여준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에서도 크고 작은 색면들은 재즈 리듬처럼 춤을 추지만, 산만하거나 난잡하지 않다.
한국의 몬드리안을 기다리면서
화가나 조각가를 그림이나 그리고 조각이나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화가와 조각가가 있다면 장인이나 장사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도시 계획가, 건축가, 관료들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몬드리안의 형이상학적 순수성 같은 것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청계천에 물이 흐르고,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광화문 사거리가 복원되고 있다. 또 판상형 아파트 설계가 여러 번 반려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몬드리안의 그림에서처럼, 질서와 혼란의 대립을 넘어서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인간이 공간을 만들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이후 사람을 만든다. 풍수라는 한국의 공간 사상도, 많이 퇴색하고 타락했지만, 공간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있었다. 풍수가 터무니없는 논리적 비약과 얼버무리는 측면이 많고, 땅의 정기나 물과 바람이 가져가고 가져온다는 길흉화복을 믿기는 어렵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을 만들 의무가 건축가들에게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집장사가 아닌 건축가, 땅 장사가 아닌 도시 공학자, 몬드리안 같은 화가를 닮은 그런 건축가가 한국에도 있어야 할 것이다. <광화문 부기우기>를 위해서. 서울 시장이 몬드리안의 그림을 유심히 봤으면 싶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