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한국은행의 김성민 채권시장팀장 입니다.
(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좀 가벼운 얘기를 하죠. 부친께서 한은 총재를 지내셨습니다. 한은 입행과 관련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어려운 사이에요. 특히 저의 경우는 더욱 그랬어요. 서로가 불편한 일이죠. 여러가지 조심할 것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유학 후 한은으로 복귀하고 나서 3년정도 아버님과 같이 근무했어요.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닙니다.
-한은을 그만두고 실제 시장에 나아가서 돈 좀 벌어봐야지 하는 생각은 안하셨습니까.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데요.(웃음)
<시장의 메커니즘을 모르면 시장개입 못해..시장의 머리꼭대기에 앉아있어야>
-누가 불러주면 옮기신다는 말씀인가요.
▲하하하. 저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 세대는 나와 다르다"고 말이죠. 외환위기 이후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민-관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후배들에게 "아직까지는 관에서 민으로만 가는 원웨이 방식만 유효하지만 이제는 민에서 관으로도 오게 될거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준비를 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환시장을 담당할 때 뼈저리게 느낀 건 이제 시장 메커니즘을 모르면 시장개입을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장의 머리꼭대기에 앉아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일해보는 것도 필요하죠. 그런데 불러주는 데가 없으니..하하
긴 시간은 아니지만 부하 직원들을 증권사에 내보내기도 합니다. 한 2주 정도 파견근무를 나가서 대충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것만이라도 파악하게 하려구요. 앞으로도 시장경험을 쌓게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게 될 겁니다.
<채권시장의 매력은 ‘과학성’에 있다>
-채권시장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매력이라기보다 저는 채권시장이 금융시장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증권회사들은 큰 돈은 다 채권시장에서 벌어들입니다. 개인투자가들이야 주식시장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겠지만요.
제가 외국책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읽었습니다. 채권계의 거물이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는데 증권회사에 근무한다고 하자 미인들이 막 몰려들더래요. 사람들이 어떤 분야를 맡고 있냐고 물어서 채권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른 곳으로 가더라는거죠.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하시겠지만 이 정도로 채권이 개인들에게는 인기를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우리나라 증권회사들이야 딜링도 제대로 안하고 중개업무에 주력하고 있지만 증권회사가 큰 돈을 벌려면 채권시장에서 성공해야만 합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도 채권시장이 정말 중요합니다. 통화정책의 파급경로 자체가 채권시장을 통해서 실물경제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또 채권은 주식보다는 과학적인 요소가 많다고 봅니다. 주식의 valuation이라는 것이 참..몇 년후의 기업가치를 평가한다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리스크 헤지의 개념에서도 듀레이션을 조절하는 채권이 훨씬 과학적이에요.
채권시장은 그래도 이론이 좀 통하는 곳입니다.(웃음)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행한 “randomwalk”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주가가 바로 “멋대로 움직인다(randomwalk)” 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채권은 방향이라도 있잖습니까. 저는 한국 채권시장이 상당히 많이 발달했다고 평가합니다. 경기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들은 물론 분석노력도 꾸준히 이어지는 것 같아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 채권시장에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별로 없어서 분석기법이 좀 떨어진다는 거죠.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에게 주식시장을 개방하면서 주식에 있어서의 분석기법은 놀랄만큼 발달했어요. 물론 채권시장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 채권시장은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조5000억원의 예보채를 시장매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대출금리는 10%가 될까말까 할 정도였습니다.
예보채를 입찰하는데 처음에는 은행들이 "한은이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덤터기 씌우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는지 입찰에 부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제한적으로 입찰을 하자고 말하고서는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지금 은행들의 평균대손이 얼마냐. 2~3% 아니냐. 지금 금리가 10%내외니까 이 대손과 신용보증기금 출연료 0.5%를 더하면 12.5~13.5%가 된다. 이 비율로 대출할 자신있으면 예보채 입찰에 들어오지 않하도 좋다"고 말이죠.
은행 관계자들이 제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공개입찰을 할 때는 미동도 않더니 제가 제한입찰을 한다고 하니까 "이거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지 입찰에 적극적이더라구요.
증권회사들도 “우리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난리를 치고, 어떤 은행은 수수료를 받고 증권사에 넘길 생각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몇 달동안 예보가 질질 끌면서 입찰했던 것을 한 달만에 팔아치웠습니다. 군중심리라는 것이 묘하더군요.(웃음)
-개인적으로 재테크는 어떻게 하십니까.
▲돈이 없어서 재테크를 논할 처지도 아닙니다. 옛날에는 주식을 좀 했는데 요즘은 전혀 손대지 않고 있어요. 시장과 접하게 되면서 가지고 있던 주식을 다 팔았습니다. 제가 보유한 주식이 모두 은행주였거든요. 그후 은행주가 얼마나 많이 떨어졌습니까.
채권투자는 재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제가 부자도 아니고..결정적으로 저는 게으른 사람이라서 재테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직전에 어떤 사람이 제가 살고 있는 집을 아주 비싼 가격에 사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집을 팔라고 하기에 속으로 ‘이렇게 높은 가격을 부르면 다시는 사자는 말을 못하겠지’라는 마음을 먹고 부른 가격인데 아 글쎄 그 가격에 사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무척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그게 97년 하반기였으니까 어느 정도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지금 집 팔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약하고 이사 가는 것 등이 귀찮아서 집을 안 팔았습니다. 그 후 바로 외환위기가 닥쳤죠.(웃음) 그러니 저에게 재테크에 관해서 물어보지 마십시오. 허허
<한은맨은 무엇으로 사는가>
-제가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한은맨은 무엇으로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팀장님만 해도 다른 분야에서 일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아계시잖아요. 한은이 높은 급여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들이 한은의 위상이나 기능에 관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런 건 있을 겁니다. 좀 잘 될 때까지 두고보자는 심리가 있다고 봐야할지..허허. 어찌됐건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중요하죠.
아무도 안 알아주고 집에서도 그게 뭐 대수냐는 식의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쓰고 살기보다는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또 일은 하다보면 자연스레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고…
-아들만 둘을 두셨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걷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둘째는 아직 어려서 말할 것이 없고 첫째 놈에게는 일찌감치 "경제학 하지 말고 이과 전공해라"고 말해뒀습니다. "경제학하는 사람들은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으니까 기술이라도 개발하는 이과에 가라"는 뜻에서요. 본인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군요.(웃음) 어쨌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어쩌겠습니까.
-한은에 13년 동안 계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기억에 남는 일은…글쎄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돈을 많이 풀면 금리가 내려간다”는 것이 일반 이론인데 제가 89년에 “단기금리는 일시적으로 하락할 지 모르나 장기금리는 오히려 상승할 수도 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쓴 적이 있어요.
지금와서 돌아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난리가 났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부터 시작해서 ‘웃기는 소리 하지말라’는 말까지 하여간 얼마나 말들이 많던지...지금은 오히려 그 이론이 맞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 않습니까. 어쨌든 보고서를 써서 그것이 확인될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김성민 팀장 약력)
-54년 출생(본적 서울 서대문구)
-대광고졸업
-74년 연세대 경제학과 입학
-78년 한국은행 입행
-84년 미 브라운대 경제학 석사
-88년 미 텍사스공대 경영학 박사
-88~92년2월 조사 제1부(통화금융2과, 통화금융과)
-92년3월~93년8월 IMF 근무
-93년9월~94년8월 국제부 외환시장과 조사역
-94년9월~95년8월 국제부 외환시장과 과장
-95년9월~98년4월 자금부(시장조사과장, 공개시장과장)
-98년5월~ 금융시장국(공개시장과장, 채권시장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