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환의 홍보에 울고 웃고)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 등록 2006-09-13 오전 10:59:01

    수정 2006-09-13 오전 10:59:01

[이데일리 문기환 칼럼니스트] 북한 관련 이슈는 언제나 우리 언론의 중요 관심사이며 뉴스메이커다. 남북경제협력의 최일선에 있었던 종합상사 ㈜대우의 언론홍보에서도 북한 문제는 항상 중요했고 또 민감했다. 이번 칼럼은 북한과 관련한 세번째 에피소드다. 혹시 북한 이야기만 계속 쓴다고 지루하게 생각하실 애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다음은 언론에서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관계자 코멘트 인용과 관련해 벌어진 해프닝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북한이 위협이라는 사실을 주변국에 다시 한번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 ABC 방송은 미 국무부, 국방부 관계자들 말을 인용해 북한이 핵실험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2006년 8월 20일자 어느 신문의 보도 내용이다.

자,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13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정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북한이 NPT (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겠다는 것은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혹을 더욱 짙게 하는 것이라며, 이에 따른 남북간의 긴장고조와 국제제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북한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93년 3월 13일자 신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방북 1년 후,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서서히 본궤도에 진입하려는 시점에 나온 북한의 NPT 탈퇴라는 폭탄 선언은 일시에 남북관계를 냉각시켰다. 역시 경제와 무역은 정치와 외교 안정이 우선이다.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국제 분야 등 큰 이슈가 발생하면 언론에서는 각계 각층 사람들의 코멘트를 인용해 여론의 흐름을 보여준다.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소위 전문가의 의견이다.

1993년 3월 13일 토요일. 장소는 대우센터 5층에 위치한 ㈜대우 홍보팀 사무실. 출근한 뒤 커피 한 잔 마시며 조간 신문을 훑어 보는 시간이었다. 8시 15분쯤 되었을까. 필자 책상 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벨소리를 보아 외부 전화가 아닌 회사 구내 전화다. “여보세요?” “문팀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다짜고짜 엄청나게 화가 난 목소리다. 모 경제 신문에 본인의 이름이 거명된 잘못된 기사가 나갔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항의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북한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였다.

그는 지금 당장 홍보팀으로 오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여튼 홍보팀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구나!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어제 가판 체크에서 발견 못한 악성 기사라도 나갔나?” 하며 문제의 경제 신문을 찬찬히 훑어 보았다. 대부분의 기사가 어제 북한이 NPT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했다는 것을 이슈로 다루고 있었다. 그 중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각계 각층 사람들의 반응을 모아 놓은 기사도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북한이 돌연 유엔산하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시설 관련 특별사찰 요구를 거절하고 NPT 탈퇴 선언을 한 것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내용이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소속 부서와 직위, 심지어 괄호 안에 나이까지 분명히 명시된 바로 그 북한 사업책임자의 이름으로 된 코멘트였다. “…북한의 이번 행동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대동소이해 표면적으로는 전혀 문제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대북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북한측 파트너를 만나야 하는데 만일 그들이 이 기사를 보게 되면 큰일’ 이라고 얘기했다. 지금까지 공들여온 사업이 무산되거나 향후 잡혀 있는 미팅 일정이 취소되거나 대우측 담당자 변경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제 대충 상황이 짐작됐다. 전날 오전이었다. 11시 40분경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각계 코멘트를 쓰고 있는데 북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며 책임자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통화를 못한 상황에서 본인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코멘트를 기명으로 해서 나간 모양이다.

일단 필자는 사태를 원만히 수습해 보겠다고 간신히 달래 북한팀 책임자를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곧바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감시간은 다 되가는데 연락이 안돼 지극히 평범하게 코멘트를 썼는데 그렇게 될 줄 미처 생각 못했다.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을 대신 전해달라” 이런 내용이었다.

사태 진정은 간단치 않았다. 홍보팀이 북한팀의 강력한 요청으로 언론중재 요청 신청서까지 작성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실제 신청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홍보팀은 신문사와 북한팀 사이에서 한동안 곤란한 시간을 보냈다. 

한참 지난 후, 그 북한팀 책임자에게 슬쩍 당시 북한쪽을 어떻게 무마시켰는지 물어봤다. 해명하느라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다행(?)스럽게도 그 신문기사를 본 북한측 사업담당자들이 ‘설마 대우의 사업파트너가 그런 코멘트를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도 남한 언론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라며 큰 문제로 삼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문기환 새턴커뮤니케이션스 파트너 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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