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길 양 옆에 우뚝 선 10m가 넘는 눈의 벽. 눈벽 사이로 삐죽삐죽 나뭇가지가 튀어나왔다. 눈 속에서 ‘철근’처럼 눈을 지탱하는 나무들은 가엽게도 눈이 완전히 녹는 7월에야 봄을 맞는다. 고불고불 달리다 시야가 확 트이면, 그곳부터 적설량 10m, 최장 5㎞ 슬로프의 갓산 스키장이다. 길이 끝나고 눈벽 위에 올라선 것이다. 도쿄 길바닥이 벚꽃 잎으로 뒤덮이던 4월 10일. 벚꽃은 아직 개화하지 않았지만 갓산스키장이 위치한 야마가타현도 따뜻한 봄이었다.
갓산스키장은 이날 개장했다. 7월 중순까지 운영할 예정이라니, 눈은 복더위 직전까지 쌓여있을 모양이다. 갓산 높이는 1984m. 우리 한라산(1950m)보다 약간 높지만, 일본 산 중에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따라서 특히 추운 편도 아니다. 다만 지형적 특성 때문에 갓산은 유달리 눈이 많다. 겨울엔 리프트가 폭설에 덮여 보이지 않을 정도다. 눈이 멈출 즈음부터 잔설(殘雪)이 녹아내리는 긴 시간 동안 즐기는 것이 바로 갓산의 여름스키다. 6월로 접어들면, '블루(하늘)', '그린(너도밤나무 숲)', '화이트'(스키장)의 3색 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엔 바람꽃, 원추리꽃 같은 고산식물들이 얼굴을 내민다. 자연과 계절의 미묘한 시차가 'Surfin' in the Snow'라는 이율배반적 즐거움을 선물한 것이다.
여름스키와 눈벽이 자연의 선물이라면, 스키로 나른한 몸을 맡기는 시즈온천은 역사의 선물이다. 하룻 밤을 청한 여관 '센다이야(仙台屋)'의 '오카미'(女將·일본 여관은 '오카미'로 불리는 여주인이 손님 접대를 주도한다)에게 "(여관을) 언제 시작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오카미'는 "350년쯤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일본 최고 권위의 도쿄 제국호텔(1890년 개업)은 명함도 못 내밀 역사다. 부근 여관인 쓰타야, 가시와야, 마이즈루야 역시 역사가 비슷했다. 갓산은 '데와산잔(出羽三山)'이라는 일본 전통 신앙의 주봉(主峰)이다. 350년 전부터 수행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카미'의 부드러운 인상과 목소리,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 꺼낸 저녁 정찬(正餐)의 잉어회는 바로 '세월의 맛'이다. 갓산에선 절대 이 맛을 놓치면 안 된다.
여행수첩
●야마가타에는 볼거리가 많다. 특히 천태종 고찰인 ‘야마테라(山寺)’는 빼놓아선 안 된다. 고찰에 담긴 ‘그로테스크’한 일본 전통의 종교적 이미지를 감상하면서 걸으면, 1015 계단이 금방 끝난다. ‘하이쿠’의 시성(詩聖) 마쓰오 바쇼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장기말을 제작하는 ‘에이?도(榮春堂) 본점’에 가면, 일본 동북지방 특산인 목각인형 ‘고케시’도 감상할 수 있다. 여주인 할머니를 보면, 일본 서민의 편안한 얼굴을 느낄 수 있다.
●메밀국수인 ‘소바’, 토란국인 ‘이모니나베’, 지역 특산 쇠고기인 ‘야마가타규(山形牛)’를 안먹고 돌아가면, 야마가타에 다녀 왔다 할 수 없다. 이 세가지를 먹으러 도쿄에서 일부러 오는 여행객도 많다. 야마가타 특산 체리인 ‘사쿠람보’는 6~7월부터 본격 출하되지만, 지금도 하우스에서 재배한 ‘사쿠람보’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