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안승규 한국전력기술 사장 등 원전 사고의 책임자들은 나란히 앉아 고개를 떨구며 한결같이 철저한 조사를 다짐했다.
하지만 원전 마피아에 대한 의원들의 문제제기에 대해선 모두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들은 원전마피아의 실상을 정말 모르는 걸까.
◇ 원전 연구부터 자문까지 ‘그들만의 리그’
‘마피아’는 정보와 규제를 독점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들을 비꼰 말이다. 금융계의 ‘금감원 마피아’, 과학계의 ‘원전 마피아’가 대표적이다.
평범한 기술자에게 마피아라는 별칭은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비밀주의의 장막 뒤에 숨은 원전운영의 매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부품 제조사와 시험평가회사, 2차 평가를 맡은 한국전력기술, 한수원 까지 그들만의 끼리끼리 담합이 결정적인 요인이 된 인재(人災)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국내 원자력 관련 전공을 개설한 대학은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양대 등 9개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원전 운영과 감시를 맡은 곳은 대부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들로 채워져있다.
이렇다 보니 원전 건설에서부터 유지보수 관리에 이르기까지 부실과 비리가 드러나도 서로 짜고 감싸는 구조가 형성돼 외부에 알려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이 도입된 지 5년 만에야 세상에 진실이 밝혀졌지만, 내부 고발자가 없었으면 대형사고가 날 때까지 아무도 몰랐을 거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 “유착의혹 부르는 재취업 관행도 손봐야”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 원전에 불량 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난 지난달 28일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기자브리핑을 통해 “문제의 업체가 검증한 제품이 더 있지만, 추가로 위조 품질검증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며 사태 확대를 경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언급이 나오자마자 검찰수사를 통해 다른 회사의 부품 시험성적서도 위조된 사실이 드러났다. ‘원전의 벽’이 높아 3자 검증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원전 운영을 100% 맡고 있는 한수원 출신 간부들이 원자력발전소 설계부터 건설, 정비 품질 안전 검사와 관련된 업체에 재취업하는 관행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원전건설은 한 기당 2조~3조원이 드는 대형 건설 사업이다. 사용 부품만 300만개에 달한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조직이 폐쇄적이다 보니 접근이 쉽지 않아 원전 관련업계에선 한수원 간부 출신 퇴직자들이 영입대상이 되고 있다.
◇ “원전, 신뢰 회복 위해선 대수술 필요”
전문가들은 실추된 원전의 안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구조부터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어떤 조직이나 투명하지 않다 보면 부패한다”며 “시민단체들이 포함된 감시기구를 만들어 폐쇄적인 조직을 투명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몇몇 전문가와 관련 공무원에 의해 결정된 원전 관련 의사결정 과정을 일반에 공개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수원 임원 출신이 업체 대표나 협회로 이동해 자기들끼리만 모임을 만들고 그곳에서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원전 마피아라는 유착관계를 도려내기 위해서는 몸통까지 싹둑 잘라야 한다”고 비판했다.
현재 국회와 원자력안전위에서는 원전비리 재발을 막기 위해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고 있다. 원안위는 비리 제보 접수창구인 원자력안전신문고를 보다 확대해 ‘원자력안전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했다. 초대 옴브즈만으로 법무법인 로고스의 김광암 변호사가 위촉됐다.
이강후 새누리당 의원은 ‘원전 비리 방지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 의원은 “지난 33년 간 산업부 공무원으로서 재직하며 원전 마피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를 파악해 왔다”며 “모든 원전 문제의 근원은 인재인 만큼 관련 업계로의 이직 제한 등 인적 쇄신을 골자로 한 법을 제정해 이달 임시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