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발길을 들여놓은 뉴올리언스는 지난해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상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당시 도시의 80%가 물에 잠겼고, 1000명이 넘은 사상자와 1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뉴올리언즈는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상당 부분이 복구되지 못해 곳곳에 공사가 벌어져 어수선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도 국내 최대의 벌크선사인 STX팬오션은 뉴올리언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뉴올리언스 시내에 5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곡물대리점인 ADM사의 수송단지(두번째 사진). 미시시피강을 따라 바지선을 타고 내려온 콩, 옥수수 등의 곡물은 쉴새없이 대형 컨베이벨트를 따라 수송창고로 들어오고, 이곳에 검역을 마쳐 분류된 곡물은 STX팬오션의 배를 타고 아시아 지역으로 향한다.
◇일본 수입곡물 20% 운송..미시시피 곡물 운송량 12% 차지
▲ < STX팬오션 벌크선 > | |
일본 수입곡물의 20%가 STX팬오션의 배를 통해 운송된다. 그럴 가능성이 적지만 혹여 STX팬오션이 파업이라도 하면 일본 곡물시장은 쑥대밭(?)이 될 수 있다.
STX팬오션은 세계 곡물 운송의 중심지인 미시시피 지역 곡물 운송의 12%를 맡고 있다. 미시시피지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STX팬오션의 곡물 운송량은 지난 2004년 300만톤에서 올해는 두배인 600만톤까지 급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곡물 소비량의 50%를 웃도는 수준이다.
STX팬오션을 통해 아시아권에 곡물을 넘겨주는 ARM사의 대릴 펠티어 수출담당 지배인은 "아시아로 수출되는 운송물량이 해마다 늘고 있으며, 이중 STX팬오션을 통한 운송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에서 아시아로 들어가는 곡물의 대부분이 STX팬오션을 통해 들어가는 셈이다.
최봉식 뉴올리언스 사무소장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카트리나 상륙 며칠전부터 인근 휴스턴 등의 지역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며 "미시시피강에 정박중이던 뉴 로럴 호의 경우는 오도가도 못해 선원들의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암담한 처지였다"고 회상했다.
◇카트리나 피해 뒤에도 뉴올리언스 지키며 신뢰 쌓아
그러나 비가 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지 듯, 다른 선사들이 철수할 때 STX팬오션은 오히려 자리를 지켰고, 곡물 대리점들과 더욱 두터운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이런 탓에 미시시피강 유역의 곡물 수요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STX팬오션의 곡물 운송량은 올해 3~4% 오히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든든한 신뢰는 현지 직원의 말에서도 묻어나왔다. 뉴올리언스 사무소에서 일하는 필리핀계 미국인인 레이 이베이 운영담당자는 20여년간 STX팬오션에서 일했다. "소주! 소주!"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매년 한번씩 서울에 들러 본사 교육을 받는다는 그는 이 지역의 곡물 운송 동향을 '역사책'처럼 꽤고 있다.
STX팬오션은 지난 1978년4월 뉴올리언스에 사무소를 개설한 이래 최고의 선사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카트리나 이후 일부 선사들이 휴스턴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겼지만, STX팬오션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현재 미시시피강 유역에는 미국 전체 곡물의 80%가 이 곳 8개 곡물터미널로 집하되고 있다. 이 가운데 60%가 ADM과 카길 등 2개 곡물 메이저가 점유하고 있다. STX팬오션은 ADM 곡물의 40%를 거래하는 메이저 벌크선사다.
■ STX팬오션은 국내 최대의 벌크선사로 지난해 기준으로 전세계 70여개국의 주요 항구를 3300번 이상 운항했다. 올 수출실적은 21억 달러. 곡물 이외에도 철재, 합판, 시멘트, 광물 등의 다양한 벌크 화물을 취급하고 있으며, 곡물 분야에서는 전세계 곡물물동량 3억6888만톤 중 4%(1372만톤)을 운송한다.
▲ <곡물수송장치, 미시시피 지역의 곡물이 이곳에 집하돼 STX팬오션의 벌크선 등을 통해 해외로 나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