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세 세입자를 위한 변명

  • 등록 2013-07-21 오후 4:51:06

    수정 2013-07-21 오후 5:04:42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하나의 유령이 부동산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전세’라는 유령이. 시장의 모든 집단들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동맹을 맺었다. 전세 세입자치고, 돈이 있어도 집을 사지 않는 얌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전세는 이미 시장의 모든 이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 이제 전세 세입자들은 시장의 애물단지라는 비난에 스스로 답해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가 지금 한국의 건설부동산부 기자로 일한다면 공산당 선언 대신 이런 글을 남겼을지 모른다. 각색된 우스개 얘기이지만 가벼이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전세가 요즘 주택시장을 어지럽히는 ‘유령’ 쯤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아서다.

전세 세입자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주택 구입의 고마운 지렛대이자 주거 약자로 여겨졌지만 이젠 그 눈길이 싸늘하기만 하다. 그 어떤 매매 활성화 대책에도 전세만 고집하며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얄미운 골칫덩어리라는 것이다.

수요자들이 전세를 선호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매매와 월세보다 전세를 택할 때 경제적 손실이 훨씬 작기 때문이다. 집값은 언제 반등할지 알 길 없고, 집주인이 받는 월세 이자율은 은행 대출금리를 크게 웃도니 같은 금액이라도 전셋집을 택하는 게 당연하다.

최근 들어 정부 대책은 대략 두 갈래로 굳어진 것 같다. 매매시장을 활성화하거나, 아니면 민간 임대 공급에 군불을 지피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시장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다. 매매 활성화는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이어서 효과를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민간 임대주택시장 활성화도 월세 위주의 공급인 한 임차인에게서 호응을 얻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해법은 뭘까. 정부의 태도를 바닥부터 뜯어고치는 데에 있다. 지금까지 서민들은 전세제도를 통해 정부가 지불해야 할 주거 복지 비용을 대신 부담해 왔다. 우리에게 ‘주거 불안정’의 다른 말이 곧 ‘전세난’이었던 이유다. 전세시장 불안은 공공 임대주택 건설 등 근본 대책보다 전세대출을 독려하며 국민 손으로 제 코를 풀려 했던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많다. 정부는 전세 세입자의 ‘변심’을 기다리며 엉뚱한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서민의 실질적인 주거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을 서둘러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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